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온가족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있는 시간만큼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그러나 현대인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런 순간을 자주 가질 수가 없다. 밥 한끼 함께 나눌 사람도, 시간도 잃어가면서 점차 고독해져가고 있다.
소박한 나눔의 미덕
옛날 할머니들은 집 나간 식구는 물론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손님의 밥까지를 해놓고 사람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나누는 밥상에 복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나는 나그네나 걸인들에게까지 밥을 아끼지 않았다. 결코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쌀독이 바닥났다해도 각자의 몫을 조금씩 덜어서 나누면 되는 것이었다.
그 나눔은 어찌보면 적선이요 저 세상의 복을 이 세상에서 비축해두는 공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그런 의미를 두지 않는 단지 소박한 나눔일 뿐이다. 밥을 먹는 일이 인간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작고한 천상병 시인은 내집 하나만 있었으며...하는 평생소원을 꿈꾸었고, 노동자 시인 박노해는 여럿이서 함께 밥먹는 것을 노래하며 한때 옥중에서 독상을 받기도 했다.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 아서 식은 저녁밥을 받았습니다/사는게 별거야/혁명이 별난거야/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늘 땅에서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거지...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끼리 떳떳이 저녁밥을 함께 먹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서울 인구의 절반이 무주택자였고 빈민의 78%가 셋방 살이를 하던 시대, 전직 대통령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챙겼고 달동네에서 월세를 들었던 20대 부부가 살던 집조차 철거를 당하게 되자 고민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같은날 신문에 함께 난 적이 있다.
지금도 실업자는 여전히 100만명 수준이고, 밥을 굶는 어린이도 16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낙천, 낙선운동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한창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도 신문 한귀퉁이의 이런 외침이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도 세끼 밥 먹을 줄 알아요. 1년은 365 일이에요. 학교에서 급식주는 280일이 아니라구요, 2000년에는 하루 세끼를 먹고 싶어요.
빈부격차 없는 세상을
세상에 이만큼 처절한 외침이 어디 또 있을까. 플라톤은 자기 제자 이리스토텔레스에게 어느사회에 서나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5배 이상 수입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의 수입과 가장 부자인 사람의 수입을 비교할 수가 있을까? 상위20% 사람들의 수입과 하위20% 사람들의 수입을 비교하는 것조차 힘들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지난달 대통령은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재계에 빈민기금을 조성할 것을 권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 말씀에 끌려가는 빈민지원은 총선무렵의 일과성에 그치고 빈민층에 상대적 박탈감만을 안겨줄 것같아 씁쓸하다.
김지하 시인은 밥을 하늘이라고 했다. 하늘을 한 사람이 독식할 수 없는 것처럼 밥은 서로 나눠먹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있는 자를 질투하거나 고소득계층의 몫을 떼어내 빈곤계층에 지원하는 식의 단순평등이나 재분배차원은 불가능 하지 않은가.
박노해 시인의 한밥상에서 나 김지하 시인의 밥은 밥을 같이 먹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부자나 빈자나, 권력자나 소외자나 그 누구하고도 격의없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밥 한 그릇같이 먹는 일조차 그리 간단치가 않은 것 같다. 할머니들이 누구하고도 같이 밥을 먹었던 그런 공동체의 순수함이 아니라 밥에도 어떤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얼마전 전남 목포교육청은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식사대접만 받아도, 명단을 공개하고 징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하지 않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이 밥 한끼 같이 목은 것조차 규제를 받고 눈치를 봐야한다는게 씁쓸하기만 하다.
신세진 이에게, 고마운 분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할 수 없는 세상이 인간관계의 기초마저 허물어 버리고, 등돌리고 않자 혼자 먹는 고독한 밥상을 대하 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혼자 잘먹고 잘 살것 같지만 그렇게 되질 않는게 세상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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