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린커샤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는 이색적인 마을 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무덤 쓸 자리가 발견될 때까지는 죽지 말기로 한다고 결의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동네 유일한 묘지인 교회 마당이 무덤으로 꽉차고 이제 통로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결의안의 투표결과는 28:1로 반대표가 하나 나왔는데, 이것은 이 마을의 장의사였다고 한다. 비단 영국의 경우 뿐일까.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익살스런 풍자가 나올 법 하지 않는가.
해마다 늘어나는 묘지
설 연휴기간 동안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설날 귀성객들의 공통된 화제는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을 고생했느냐하는 것과 조상의 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명절에 고향 가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져 온 김에 성묘를 해두자고 선산을 찾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고향가고 선산찾는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무슨 수를 내야겠다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어디 그뿐이 겠나.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 때가 되면 노부모를 모신 가정에서는 장묘문제를 조심스럽게 논의한 가정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 가운데 노부모의 산소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땅히 묏자리를 구하기 어려운데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고향에 선산이 있더라도 시간이 없어 성묘를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후손들이 조상의 산소를 찾지않아 무연고묘와 폐묘가 늘고 있다고 한다.그런데도 묘지면적은 해다마 서울의 여의도 면적만큼씩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1월 한달동안 서울에서는 하루에 평균 105명의 시민이 숨지고, 이 가운데 58명이 화장 해 55%의 화장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서울 시설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이전에는 오래도록 30%대에 머물다 99년 43%로 치솟았고 올해들어 50%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여기엔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화장유언도 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재벌 회장의 유언실천이 화제가 되면서 장묘제도개선 시민운동이 힘을 얻은데다, 지도층의 참여와 일반인의 의식변화가 가세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화장문화 개선과 정착
IMF체제 아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비용과 품이 많이 드는 매장보다 싸고 간편한 장례를 원하는 계층이 늘어난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아직 전국적으로는 화장률이 30%에 못미치지만 출산을 저하는 필연적으로 화장률을 끌어올려 우리의 장묘문화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출산률이 떨어지면서 외동딸 가구가 크게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하나 뿐인 아들에게 묘지관리 부담을 주기 꺼리는 부모가 많아져 자연스레 화장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가 조상교라 할 만큼 조상숭배의식이 높고, 후손의 화복이 선조의 무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묘지풍수가 생활을 지배하는 한 쉽지는 않은 문제다.
지난해 어느 국회의원이 입법과정 에서 한시적 매장제도에 관해 헌법상 사자(死者)의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며 반대한 적이 있다.
이같은 매장 제일주의가 우리의 의식에 남아있는 한 몇 백년 내려온 제도와 인습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여기에 화장장이나 납골시설 그리고 장례식장 등이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있지 않은가. 인구 2000만명이 넘는 서울과 수도권에 화장장이 겨우 네곳 뿐이라고 한다.
화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밖에 없다. 또 있는 시설도 위생적인 시설과 정중한 서비스는 고사하고, 처리능력이 달려 몇시간 씩 대기하거나 다른 시설을 찾아나서는 불편을 감수해야한다고 한다.얼마전 한 일간지의 사설은 화장 과 납골시설이 부족한 것은 관련법의 규제와 화장시설을 혐오하는 국민의식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건축법, 도시계획법 등이 도심지와 주택가에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물론 장례식장까지 들어서지 못하도 록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화장장, 납골당 같은 말에서 오는 부정적 인상을 씻어낼 새로운 어휘를 창출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고 제안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매장 맹신주의에 묶여 금수강산을 묘지강산으로 만드는 일을 방치할 수 있겠는가. 무덤 쓸 자리가 발견될 때까지는 죽지 말기로 한다고 결의라고 해야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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