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의 잔치는 끝나고, 바다로 해맞이를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덮인 설원의 스키장에서 붐비고 있다. 며칠 후면 또 한해가 바뀌는 설날이다.
용의 해 경진년, 역술인들은 과거 천년 동안 묵었던 이끼가 걷히고 새로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천년에 용꿈을 꾸며 용트림을 하려한다.
이제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귀향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고향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을 지켜보며 북녘 하늘을 넋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땅엔 1000만명 쯤 된다고 한다.
현재 실향민의 실태 통일부 등 정부기구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향민 수는 800만, 이미 세상을 떠난 실향민 1세대를 고려하면 2, 3세대를 포함해 그 정도는 족히 되리라.
실향민은 누구인가? 한 신문사의 「실향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향민 1세대들은 6.25 발발 후 1.4 후퇴까지 가장 많은 63.1%가 월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해방 이후 6.25 발발 이전 31.7% 해방 이전이 3.2%, 그리고 1.4후퇴에서 휴전까지는 2%정도였다.
특히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할 때 이들과 함께 군용선으로 해상 피난길에 오른 사람이 한달 남짓 사이에 공식 확인된 숫자만 20여 만명, 50년 12월 20일 흥남부두에서 2차 피난민만도 1만 7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결국 1945년 해방에서부터 8년에 걸쳐 100만명에서 많게는 200만명이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흩어져 이북의 고향을 본떠 약 36개 실향민 정착촌을 이루었다. 이북 5도청 자료에 의하면 실향민 정착촌은 경기에 5곳, 강원 4, 충북 1, 충남 1, 전북 20, 전남 4, 경남 1곳에 이른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강원도 속초에 「아바이 마을」이란 실향민 정착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쪽으로 바다, 서쪽으로 청초호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행정동명 청호동이 바로 그 「아바이 마을」이다. 아바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친구라는 뜻이다. 아바이 마을은 남한 최대의 실향민 마을로 1155가구 가운데 800여 가구 3437명이 월남가족이며 함경도 출신이 90%를 차지한다고 한다.
주로 포항 쪽으로 피난해 살던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 가까운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바닷가 쓸모없는 모래밭과 갈대 숲이었던 곳에 사람 허리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토굴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1954년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수복 이후 북쪽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거주하여 속초리 5구가 되었다.
화해와 일치의 기도를이들은 이곳 아바이 마을에 함남 북청군 신포읍 출신이 모여 사는 「신포마을」, 영흥군 출신의 「영흥마을」, 북청군 속후면 사람들이 모인 「짜꼬치 마을」과 같은 또다른 마을을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북청사자놀이를 하며 설 무렵이면 망향의 시름을 달랜다. 그리고 대부분이 바다에 나가 통통배로 오징어나 청어와 같은 고기들을 잡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뱃고사를 지내고 망향제를 지내며 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며 산다.
동내 아낙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 중에 「돈돌나리」는 인상적이다. 「돌아간다」는 뜻의 돈돌나리는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비원이 담긴 노래였다. 내가 최근에 읽은 속초 시인 이상국의 시 「청호동에 가 본 적이 있는지」는 지상에 떠도는 섬 아바이 마을좥의 애환을 이렇게 그려주고 있다.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남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설은 「설다」, 「낯설다」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삼가하고 조심하는 날로 설을 풀이한 곳도 있다. 그러나 설은 아직도 실향민들에게 「서러운 날」이다.
분단 반세기. 이제 실향 1세대들이 세상을 떠나고 2, 3세대들이 그들의 서러운 삶을 딛고 이땅에 뿌리 내리고 사는 지금, 그들에게 두고 온 고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6.25전쟁 50주년을 맞는 올해의 설이 실향민들에게는 더욱 서러운 해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6.25때가 되면 서부전선 최전방 까치봉 기도의 집이 있는 통일동산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민족 복음화 추진본부 주관으로 「6.25 통일 기원미사」를 올린다. 수천명의 실향민, 장애인, 군인, 학생들이 모여 남북통일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도하는 이유는 바로 「기도는 핵폭탄보다도 강하다」는 믿음으로 남북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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