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세기, 새 천년의 해가 밝았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미래의 봉우리, 그 2000년의 문턱에 우리가 올라섰다. 다 알다시피 서기 1년이 1세기의 시작이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도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지만 2001년에서 21세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00년은 어떤 해일까? 세기를 잃어버린 해가 2000년일까?
성경에 보면 하느님은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요일하루를 쉬셨다. 이날은 이번 주에서 다음 주로 넘어가는 휴식일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일이라고 부른다. 하느 님의 날인 것이다. 주일은 그래서 어느 요일에도 속하지 않는다. 6년을 일하면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이라고 하여 자유로운 한해를 허락한다. 곧 6년과 8년 사이에 완충년이다.
2000년은 주님오신 기쁜해
2000년은 새천년의 원년이되 20세기와 21세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완충년이다. 100년에 한번 1년을 몽땅 기쁘게 지내라는 한해라서 가톨릭에서는 대희년(大禧年)이라고 명명했다.
2000년에는 주님이 오신다니 크게 기쁜해 대희년인 것이다. 그런 만큼 2000년은 20세기에도 속하지 않고 21세기에도 속하지 않는 프리즘과 같은 해다. 2000년은 2001년에서 시작하는 21세기 를 정직하게 맞기 위해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진실의 해 대진년(大眞年)이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제는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준비할 때다. 기쁘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진실된 2000 년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1월의 몫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강생의 신비」라는 교서를 통해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 중에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하고 참회하고 선행과 자기희생을 하면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세계는 디지털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한다. 또 지금 세계는 「제2의 자본주의 혁명」을 말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혁명을 화두로 우리사회도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과학의 혁명적 발달 못지 않게 보편적 인간가치와 인권, 평화, 환경보호 등 인류 공동선을 위한 세계규범이 강조되고 있는 점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계화도 정보화도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문화의 세기를 말하고 사람 중심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인간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삶을 가꾸어 갈 수 있을까?
나는 새해 벽두 타고르의 「기탄잘리」라는 시집을 다시 읽을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고등학교 학생 정도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영문으로 쓰여져 있기에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고 「기탄잘리」를 다시 읽자는 것은 라빈드라 나드 타고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다.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노벨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
타고르 시에는 경건한 삶의 태도와 정감이 격도있게 담겨져 있다. 그의 시 「길 잃은 새」는 내가 2000년 새해 가슴에 새기고 싶은 잠언처럼 느껴져 더욱 좋았다. 모든 사람들이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2000년 벽두 이 시는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함께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대지여, 나는 나그네로 그대 땅에 들렸고, 손님으로 그대 집안에 살았고 친구로 그대의 문간을 떠나노라』
이 땅에 나그네로 와서 손님으로 살았고, 이제는 친구로 떠난다는 뜻이다.
손님처럼 고맙게 또 주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며, 또 떠날 때는 좋은 친구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는 지금껏 이 땅에 함께 살며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 그 해답을 이 짧은 시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쉽고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가 있을까? 환경오염을 비롯하여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해야할 과제로 제시하고 있 는 요즘, 우리는 이 시 한편을 통해 겸손한 심성과 아름다운 태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그네로 왔고, 손님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그대 집안과 같은 이 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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