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성탄절 전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이 기억납니다. 작년 12월 21일에 발행된 불교신문의 「시사설법」에는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이유」라는 지홍스님(조계사 주지)의 특별한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수 탄생 자체가 인류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인 것이다.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위해 대속(代贖)하고 구원하기 위해 낮은 데로 임하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감내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 었다… 예수님은 「사랑」은 인종과 민족, 부유함과 빈곤함의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이 가 슴에 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에 축하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명동성당에서 성탄 자정 미사를 마친 후 성당 입구에서 스님 다섯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성탄 밤 미사를 참석하였고 구유의 아기 예수님 앞에서 합장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성탄을 축하해 준 분은 그 스님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수많은 사찰에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스님과 불자들이 성탄 축하 현 수막과 오색연등을 내걸고 성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성탄 밤미사를 마치고 저는 다른 날과는 달리 조계사 총무원 앞을 거쳐 혜화동 사제관으로 왔습니다. 그것은 총무원 앞에 걸려 있다는 성탄 축하 현수막과 오색 연등을 보고 싶었기 때 문이었습니다. 과연 조계사로 향하는 우정국로 거리에는 오색연등이 걸려 있었고 조계사 앞 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현수막의 한쪽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있고 다른 쪽에는 동자승이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저는 사제관 가까이에 있는 사찰을 찾아갔습니다. 그곳 입구에도 조계사에 서 보았던 것과 같은 성탄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산사를 한바퀴 돌고 난 후 종무소( 절의 사무를 맡아보는 곳)에 들렀더니 그곳에는 여러자료들이 가지런히 있었습니다. 주로 불교와 관련된 작은 책들이었는데, 그 한칸에는 제 눈을 번뜩 뜨이게 하는 유인물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대 지금 어디에」라는 서울대교구의 선교 소책자였습니다.
월간 「그대 지금 어디에」는 서울대교구 홍보실에서 발행하는 선교용 소책자인데 제가 홍보실 직원들과 함께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보는 순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그곳의 스님과 불자들은 비록 천주교에서 만들어진 책이 었지만 그것을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고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지런히 책장에 꽂아 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타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같은 종교인으로서 서로 외면하거나 적대시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존중하고 대화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성탄절날 스님과 불자들이 보내 준 따뜻한 인사는 우리 교회에 주는 아름다운 선물임을 느꼈습니다. 이제 새 천년의 21세기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리고 5월 11일에는 「석가탄신일」을 맞게 될 것입니다. 새천년, 처음으로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여러 성당에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현수막들이 걸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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