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00년 대희년이 밝았다. 그토록 기도하며 준비해온 「은총의 해」 2000년 대희년이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성탄대축일과 더불어 시작된 대희년은 새로운 천년기 제삼천년 기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1999년12월 24일 자정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열어젖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오늘 성탄대축일부터 200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를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 기간으로 선포했다.
『여러분에게 큰 기쁨을 알립니다.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온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하십시오. 이 복된 날로부터 2000년이 흘러 정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교회는 올해를 희년으로 경축하노라』( 대희년 선포문 요약).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대희년은 그리스도 강생 사건의 기념으로서 그리스도인은 물론이요 비그리스도인들까지도 포함한 온 인류를 위해 설정되어 주어진 「은총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희년 정신은 온 인류에게 외쳐지고 설명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새해, 새로운 세기, 새 천년기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특별히 오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맞이한 2000년 대희년은 온 인류가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는 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 각 교구장들의 성탄메시지는 하나 같이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교회공동체의 「회개와 쇄신」이야말로 희년 정신을 사는 전제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세상을 변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회개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무엇 보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개인 차원의 회개와 함께 공동체 차원의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대희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과도한 부채로 짓눌려 있는 빈약한 농어촌과 빈민지역 교회를 범교회적으로 지원하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때마침 인천교구의 경우 이번 성탄절을 기해 밀린 교무금을 탕감해주는 조처를 단행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교회 밖 일반 농어촌 주민들이나 도시 영세민의 부채의 부분 내지 전액 탕감을 위해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하면 좋겠다. 경제정의 실천연합이나 참여연대 등 비정부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사회의 소외 계층들이 대희년의 기쁨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노력이야말로 대희년이 교회와 신자들의 「집안 잔치」로만 그치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하나 대희년 정신의 생활화 방법으로 각 교회나 개인 차원에서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각자의 처지 대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희년의 개념이나 역사적 배경, 그리고 희년 정신을 우리 문화권과는 생소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나 성서를 들어 설명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도록 우리 문화와 역사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우리가 희년의 정신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하느님을 부모님으로 모셨으며, 영혼을 가진 모든 인간은 하느님처럼 존귀하며, 예수는 하느님 처럼 존귀한 인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믿었다. 프랑스선교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선조들의 베품과 나눔의 생활은 초대교회를 방불케 했다. 『그들의 뛰어난 미덕은 서로가 사랑과 정성을 베푸는 일입니다. 현세의 재물이 궁핍하지만, 사람이나 신분의 차별없이 조금 있는 재물을 가지고도 서로 나누며 살아갑니다. 이 교우촌을 보노라면 마치 제가 초대교회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선조 신앙인들은 생명과 재물의 소유욕과 집착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왔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순교의 삶이었다. 자기 재산은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신앙선조들의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자. 새 천년의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순교한 수많은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이 시대에 온 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좥증인들의 공동체좦(「아시아 교회」 17항)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국 교구장들의 성탄메시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많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우리 주위의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을 쏟고 나눔을 실천하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욱 깊어져 가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를 좁히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새로운 연대성의 용기를 갖고 사고방식과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아시아교회」 32항) 진정한 인간발전을 이룩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새 천년의 첫 해가 기쁨과 희망, 참된 해방의 축제가 되기 위하여 우선 내 주위를 돌아다 보도록 하자. 이 축제를 위해 내가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를 지금부터라도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내가 덜어주어야 할 주위의 짐은 무엇인지, 내가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 반성해보고 다짐해보자. 다짐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2000년 대희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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