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가는 길엔 겨울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세밑에 흩날리는 눈발의 스산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구교도소에서 성탄절을 보내고 있을 나의 대자(代子) 요셉의 얼굴이 눈발에 어른거렸다.
요셉을 만났다. 너무나도 성스럽고 아름다운 아기예수의 축일을 맞기 위해서 이미 9일 기도를 끝냈고 묵주기도 1만단을 바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떻게 그의 얼굴이 저리도 평안 하고 맑을 수가 있을까?
요셉은 껄껄 웃어보이며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고 미워하는 마음을 털어내니까 온몸이 가볍 다고 했다. 지난 열흘 금식도 엊그제 막 끝낸 참이었다. 화해한다고 마음 먹으니까 시원하고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장에 갖혀있는 새가 아니었다. 새장 밖으로 날아가려고 날개짓하는 새도 아니었다. 넉넉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새장 밖 세상을 응시하며 들떠있는 분위기 속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다.
참사랑 전하는 산타클로스
『대부님, 저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정치도 해봤고 돈도 실컷 만져보았고, 고개를 치켜들고 사람 앞에 군림도 해봤습니다. 그 허욕과 오만이 부질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욕심도 미움도 지우고 주님 앞에 참회하고 있습니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사제 앞에 고해하는 사람처럼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요셉은 교도소 공소에서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참례할 수 있는 미사성제만이 유일한 기쁨이라고 했다.
『앞으로 세상에 나가면 대부님처럼 힘들게 사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열심히 살렵니다』 그곳에 함께 찾아간 성 라자로 마을 원장 김화태 신부님 손을 잡고 굳게 다짐하는 요셉은 오히려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를 찾아온 일이 이토록 신나는 일일 수 있을까! 아들 하나 잘 두었다는 생각을 하며 서울로 돌아왔다. 거리엔 불빛이 가득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크리스마스 캐롤에 묻히고 상가 앞에선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안내원이 열심히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저 인파들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선냄비의 유래와 산타클로스의 참뜻을 알고 있을까! 입으로는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묵묵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성서말씀에 『가장 가난한 형제들에게 베푼 것은 바로 나에게 베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보태는 일은 우리들 마음의 부채를 어느 정도 갚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이웃과 사회에 크고 작은 부채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회는 그 빚짐을 깨닫고 되갚으려하는 겸손함에서 시작되는 것이요, 봉사는 그것을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는 바로 그 화신인 것이다. 서기 350년 쯤 터키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성 니콜라우스 주교는 불우한 이웃을 돕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할아버지로 소문이 나 있었다. 니콜라우스 주교는 지참금이 없이 결혼 못하고 약혼자와 헤어진 세 자매를 도우려고 그들이 잠든 틈에 금주머니를 창으로 던져 넣었다. 그런데 그것이 벽난로 옆에 말리려고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후 17세기 미국에 이민간 화란인에 의해 산타 클로스로 이름붙여진 이 사랑의 화신. 지금 우리 사회엔 이 사랑의 참뜻을 전하는 산타클로스는 얼마나 될까?
이웃 섬기러 오신 ‘아기예수’
「데미안」의 작가 헤세는 『사랑은 우리들이 고뇌와 인종 속에서 얼마만큼 강할 수 있는가하는 것을 자기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참뜻을 깨닫고 참회하며 봉사하는 삶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는 나의 대자 요셉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리고 이땅에 오신 아기예수를 기려 고통받는 이웃들을 섬기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따뜻한 손을 생각하면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