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이 지혜로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앞의 여인에게는 커다란 돌을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들을 가져오라고 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있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다. 큰 돌을 들고 있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을 주어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말한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으나, 많은 작은 돌들은 원래 자리를 잊었으므로 도로 갖다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져온 너는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을 겸허하게 견디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잘 것 없는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기에 버릇이 들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 면서 자기가 더욱 죄에 깊이 빠진 적을 모르고 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톨스토이의 「인생의 길좦」 나오는 예화다. 음미해 볼 진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걸어온 ‘인생의 길’
우리사회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고위층 인사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려드는 이는 드물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이 있을 뿐이다. 예상과는 달리 선거가 완패로 끝나자 공동여당 관계자들은 패배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정치권의 네 탓 논쟁이 하루 이틀인가. 정치권 전체가 치유불능의 불감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느낄 때 참회는 시작된다. 자그마한 돌들을 어디에서 주어왔는지 모르는 여인이 그 돌들을 되돌려 놓을 수 없듯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잘못에 대해 속죄할 수도 없다. 성탄 전에 우리 모두가 판공성사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많은 작은 돌같은 갖가지 죄를 뉘우치고 다시 태어나자는 것 아닌가!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자신의 눈에 든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했던가. 남의 잘못에는 목청을 높여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는 모두가 너그럽다. 남의 약점을 들추어 손가락질하고 비난 하기에 광분하고 있는 듯하다. 그 많은 비방, 폭로의 문건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비정하고 메마르고 살벌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 조금은 경제가 나아졌다고, 주머니 속이 넉넉해졌다고 흥청망청이다. 오늘도 특급호텔 연회장과 강남의 유흥가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가족모임, 동창회, 향우회 줄줄이 연줄따라 끼리끼리 모이고 있다.
밥을 굶는 학생이 15만이요, 탈북자의 90%가 구호의 손길 한번 받지 못했다는 기사는 기사일 뿐 나와 나의 가족들과는 무관한 듯 희희락락이다.
참회하며 한해를 정리하자
망년회, 무엇을 잊겠다는가. 어쩌면 외면하려는 자조같은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잘못은 덮고 잊으려는 듯, 굶는 이들과 떠도는 이들을 외면하려는 듯, 모두가 취하려든다. 모든 걸 다 잊어버린다 해도 불우한 이웃 만은 잊지말자. 탈북자들만은 결코 잊지 말자. 그리고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온 IMF한파만은 잊지말자. 망년, 우리의 망령됨을 바로 잡는 12월이 돼야만 한다. 송년, 헛되이 허송세월로 우리들의 소중한 인생을 소진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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