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2천년 대희년」이 인류 역사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를 「사랑」으로 요약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실 만큼 인간에게 극진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고 그 사랑을 그대로 삶 속에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대희년의 「화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 11일 오전 10시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간담회 형식의 특별 기자회견을 마련한 김추기경은 2시간여에 걸쳐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한국, 한국인, 한국교회는 새해 새천년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아 야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가톨릭신문을 비롯 국내 주요 일간지 방송사 기자들과 외신기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새천년 대희년을 맞는 소감과 신자들 국민들에게 띄우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요.
▲21세기는 정보화 세계화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그 말처럼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세계는 좁아지고 있고 그러한 현상은 정보의 신속한 교환으로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의 마을처럼 전 세계가 가까워 지는 때에 인종 피부색 성별 계층의 벽도 무너져서 진정 모두가 존중받고 또 서로를 위하고 받아들여 온 세계가 열린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는 사랑의 공동화를 이루고 실현시켜 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래는 가꾸어 가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얻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에 필요한 가치창조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합심해서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분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과 같이 물질만능주의, 허영과 거짓이 난무하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에서는 얻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 특별히 그러한 가치 실현을 위해 가톨릭 신자들을 비롯 종교인들이 맡아야할 몫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이웃을 참으로 아는 사람들이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대희년을 맞아 그리스도가 강생하신 뜻과 그분의 삶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병들고 아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을 바쳤듯이 가톨릭 신자 들은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사회에 사랑과 진리의 촛불 을 밝혀 줄 수 있는 이들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러기에 앞서 우리 먼저 스스로 사랑의 실천을 위해 노력한다면 사회가 밝아지고 온 세상에 밝은 아름다움이 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써 아름다운 인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새역사 새하늘 새땅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선례를 이룰 것입니다.
- 통일문제는 우리 한국이 안고 있는 새천년기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 사회는 지역갈등과 제주 4·3사태 등 여러가지 문제들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서 화해 화합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국적인 시각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옛 것을 되씹기만 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남북문제의 예를 들어 볼 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매우 큽니다. 그렇지만 현재 정부에서는 햇볕정책 등을 통해 노력하는 모습 을 보이고 있고 상호간 평화분위기는 상당히 진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20세기에 저질 러 졌던 수많은 전쟁들도 모두 용서와 화해를 이루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제 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가 그렇게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용서 화해라는 대전제 아래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고 또 그전에 이웃 지역간 갈등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화해하는 마음 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지역끼리 화해하고 손잡지 못한다면 남과 북의 진정한 화해도 요원할 것입니다. 특히 북한 동포들에 대해서는 정말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라도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외국인들도 돕기에 나서는데 동포인 남한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통일후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꾸준한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대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동포애 를 가져야 합니다.
-낙태 인간복제 실험 등 생명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는 날로 번성해 가고 있고 그 안에서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에 대한 가치는 거리감으로만 느껴집니다.
▲생명문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어느 사안보다도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생명을 잃는다면 2천년 대희년 얘기를 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명은 하느님이 준 것이고 하느님으로 부터 온 소중한 것이라는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인간복제 실험의 경우 인간의 보다 큰 복지를 위해 실험을 한다고 하지만 거기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과학이냐? 아니면 과학 자체의 발전을 위한 과학이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계는 하느님을 도외시 한 과학이 마치 진실된 과학인양 얘기하고 있습니다. 윤리관 가치관도 없는, 인간에게 공포만을 가져올 수 있는 연구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학은 인간 스스로를 해치는 흉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신명기 30장에 좧나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네가 택할 수 있다.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좩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같은 죽음이냐 생명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봅니다.
- IMF후 표면적인 경제성장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해지고 노동자 실직자들의 시름의 골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점진적으로 상황이 호전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고 봅니다. 저는 하느님이 한국민들에게 인적자원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볼 때 적은 부존자원, 좁은 땅덩어리, 많은 인구로 열악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한국인들은 그간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렇다면 결코 경제위기로 인해 실망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부족한 면들을 지니고 있지만 고쳐서 깨달아 간다면 희망찬 2000년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끊어버릴 것은 거짓과 허영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그같은 모습을 끊어버리고 값진 가치를 지향하면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확신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진정한 개혁은 정직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해서는 정부의 우선적 정책이 있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뒤쳐져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정책을 세울 때 복지국가로서의 모습은 한발짝 다가올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마음과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류 전체에게 2천년 대희년이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이 보편적으로 모든 이에게 뻗치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고 사랑을 사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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