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거리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벌써 대림 셋째 주. 탑골공원 앞을 지나다 초점 없는 눈으로 겨울 햇살에 웅크리고 있는 노인들을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늦은 밤 서울의 지하도를 빠져 나오다 노숙자 가족들의 초췌한 얼굴을 보았다. 언제부터 이곳에 잠자리를 펴고 허기진 얼굴을 묻으며 긴 겨울밤을 지새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어둠 속에 묻히고 명동 거리엔 사람들도 붐볐다. 백화점을 빠져 나오는 이들의 얼굴이 조명을 받아 더욱 빛났다. 휴일인데도 백화점이 몰려있는 거리는 차선조차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차량이 붐볐다. 차들의 꼬리에서 내뿜는 불빛이 소돔성을 방불케하고 있다.
추운 거리에 자선 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확성기를 타고 밤하늘을 울려 퍼지고 있다. 명동성당 언덕을 오르며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외국인 인사의 이런 말을 떠올려 보았다. 국제사회가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에 의해 쫓겨난 코소보 난민에 쏟았던 관심의 절반 정도나마 북한에 돌렸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삶이 지금처럼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좭 최근 북한을 탈출한 일곱 명의 얘기가 눈앞에 생생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코소보 난민과 북한주민
『한국에 못가면 감옥이라도…』 차가운 밤하늘에 메아리치는 것만 같았다. 북한을 탈출해 연해주 지방을 전전하던 북한 동포 7명이 러시아 국경 수비대원들에 붙잡히자 이렇게 호소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감옥이라도 좋으니 러시아에 남고 싶다』고. 만일 러시아가 어린이와 「발바닥이 찢어진」 중상자까지 있는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한다면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런데도 만주지방을 헤매는 우리 동포들 가운데 상당수는 북한과 맺은 협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순간 죽음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북한으로 송환되느니 러시아 감옥이라도〔라는 이들의 절규 앞에 인권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추운 하늘에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만 같다. 솔제니친의 작품 「수용소군도」. 작가의 수용소 체험을 토대로 재구성한 이 작품엔 공산체제에 순응하지 못한 수백만 정치범의 처절한 죽음이 그려져 있다.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 한반도의 현실이 그런 끔찍함으로 드러나고 있다. 얼마전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가 공개한 북한 수용소의 실상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영하 35도의 강추위에 발가벗긴 채 세워져 동태처럼 얼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동태고문으로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빠졌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며칠 전 막을 내린 「북한 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도 북한에는 17군데 수용소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과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서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 문제를 주제로 한 이 국제회의엔 일본의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자와 일본의 인권학자들, 그리고 지난 3월 유럽에서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지식인 성명을 주도했던 프랑스의 피에르 리글로씨 등이 다투어 참석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폭로했다.
한국이 외면한 북한인권
세계의 「행동하는 양심」들이 한국에 모여 북한 인권문제만을 다루는 최초의 국제 행사를 열고 『전세계 인류가 북한 정권에 대항하고 그들의 범죄를 만천하에 공개하는데 최선을 다하자』는 「서울선언」도 채택했다. 이렇듯 북한인권 문제가 우리 땅에서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과연 북한인권문제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북한 인권, 난민문제에 한국의 인권대통령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그들의 쓴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는가!
티베트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을 위해 소리쳐야 하는 일은 인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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