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깊은 1999년 위령성월을 맞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달 11월은 참으로 은혜로운 때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방종하기 쉬운 인생행로를 가다듬어 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죽음을 묵상하면서 참 삶의 의미를 돌이켜봐야 한다. 유명한 심리학자 페히니는 『사람의 생애는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라고 한다. 정신물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첫째 단계는 끊임없이 잠만 자는 생애로 어머니 배속 즉 태중에서의 상태이고, 둘째단계는 잠자다, 깨어났다 하는 생애로 현세이며, 셋째 단계는 깨어있기만 하는 생애이니 내세』라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는 둘째 단계에서 사용할(첫째 단계에서는 아무 짝에도 소용되지 않는) 눈, 코, 귀, 입, 손, 발 같은 것을 만들고, 둘째 단계에 나와서는 셋째 단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있다. 첫째 단계에서 태아는 둘째 단계에 있는 찬란한 광채와 음악을 조금도 모르기 때문에 거기로 옮겨나감을 태내 세계에서 본다면 일종의 「죽음」이라고 하겠지만, 둘째 단계인 이편에서 볼 때 그것은 훌륭한 「출생」이다. 이처럼 협착한 육체 속에 갇혀있는 우리는 셋째 단계에 있는 찬란한 자유를 조금도 모르고 있다.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좁고 캄캄한 통로를 이편에서 보면 「죽음」이라고 하지만, 저편에서 본다면 영원한 세상에의 「출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둘째 단계에 나와서는 셋째 단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현세에서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입으며 사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다. 정의니, 선행이니, 양심이니, 종교니 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현세에서의 삶이 셋째 단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가 여기에 있다. 이같은 양심적인 삶, 정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인간 본성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완전한 행복에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교회가 가르치는 복음성경의 내용 그대로이다.
완전무결한 행복에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세상 경계선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 경계선을 넘기 직전의 사람들 즉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메시지를 남겨주고 이승을 떠나간다고 한다. 그들이 남겨주는 메시지를 음미하면서 20세기 마지막 위령성월을 뜻있게 보내도록 하자.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하여 서로를 소중히 해주십시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한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