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스웨터나 털목도리를 짜는 여인들의 손길이 바빠지고 있다. 뜨개질은 코를 넣었다 뺐다하는 단순반복 작업에 지나지 않지만 전체와 부분이 얽히고 설 키는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뜨개질은 한 코만 빠뜨려도 주르르 풀려 내리는 속성이 있다.
오늘날 지구 생태계는 여기저기서 올이 터지고 그로 인해 생명성의 고리가 연쇄적으로 풀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생태계의 유기적인 관계망을 소홀히 하고 전체를 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중요시한 나머지 인간에게는 백해무익한 천연두 바이러스, 바리올라의 생존권리를 대담하게 옹호하고 나선 사람도 있다. 1978년에 현대 의학이 천연두를 근절시킬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을 때, 린 화이트는 바리올라를 창조한 신이 이들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직 모르므로 그것을 멸종시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화이트는 아마도 바리올라가 사람들을 죽게 함으로써 신으로부터 자신이 지정받은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그의 관점이 전체 생명계의 유기적인 관계의 중요성에 입각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나치게 소홀히 한 경향도 없지 않지만, 우리 시야의 폭을 넓혀준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전체 생명계를 고려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보면 손해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화이트의 논의를 뒷받침 하기에 좋은 하나의 예가 있다. 농사를 지을 때 밭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는 귀찮기 짝이 없는 존재다. 그러나 잘 자란 잡초를 뽑아보면 거기엔 수수알만한 뿌리혹이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뿌리혹 박테리아가 바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천연 질소비료라는 것이다.
아마도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이 모두 온전하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유사이래 줄곧 환경을 자신의 입장에 알맞게 변형시켜 왔다. 이제 자연은 우리가 더 이상 인간중심적이기를 용납치 않는다. 사실, 바리올라의 근절이 인간이라는 개체 생명의 유익은 도모했겠지만 생태계 전반에 걸친 전체 생명의 측면에서 보자면 손익을 따지기 어렵다. 그것은 오직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일이다. 뜨개질할 때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야만 전체가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처럼 자연과 함께 가는 길도 그렇게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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