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베트남을 다녀왔다. 지난 번에는 성라자로 마을을 돕는 뜻있는 이들의 성금을 전하기 위해서 김남수 주교님, 김화태 원장 신부님과 함께 연길에 있는 나환우들에게 다녀왔고, 이번에는 구 사이공, 호치민시 외곽지대에 있는 탄빈마을에 사랑을 전하고 하루만에 돌아왔다. 30년 동안 나환자를 부모처럼 모시고, 형제처럼 보살펴온 고 이경재 신부님의 따뜻하고 고귀한 모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웠다.
주위 사람들 중엔 100여명 밖에 안되는 나환우들을 위해 그토록 오랜동안 정성을 쏟느냐고 묻는 이가 없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굶주리고 헐벗은 형제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길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지금 우리들 가까이를 돌아보자. 서울에 노숙자가 다시 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IMF가 불러온 20세기 빈곤
대대적인 공공근로와 귀향장려 사업으로 한때 줄어들었던 노숙자가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서울로 되돌아 온 탓이라고. 하루 벌어 하루 입에 풀칠했던 그들이 다시 추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서글픈 징조가 아닐 수 없다. 「IMF탈출」이라는 화두가 「빈곤」이란 화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숙자 문제가 외환위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 사회가 안고 풀어가야 할 장기적인 빈곤의 얼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오늘, 한국의 빈곤상황이 IMF이전과 다른 새로운 양상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1950년대에는 누구나 가난했던 보편적 빈곤의 시대였다. 산업화와 함께 절대빈곤은 서서히 완화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절대적 빈곤율은 67년에 83%, 열에 여덟은 가난했다. 그러다 80년에 59.8%, 90년에는 50.2%로 감소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상황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98년 빈곤율은 다시 79%로 증가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장미빛 전망을 보이고 있는데 빈곤층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기회복의 열매가 지나치게 일부 계층에 편중되는 부정적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9천원으로 하위 20%의 82만8000원보다 5.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날 우리는 가난을 쓴 약처럼 맛보면서도 희망을 키워왔다. 절망의 상처에서 희망의 새살은 돋아난다는 신념을 갖고 가난을 참고 이겨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경제위기 탈출과정이 상대적 빈곤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하층민이 절대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계층의 하강」현상, 일부 상위계층이 나라의 경제력을 거의 휩쓸어 버리고 나머지 계층은 한없이 추락하는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이 제대로 없어 양동이나 플라스틱통을 소변용기로 사용하고, 세면이나 세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는 달동네 쪽방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허다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에 동참해서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데 힘이 되어주는 일이다. 봉사는 사랑의 훈련이다
지속적인 사랑을 통해 삶의 희망을 주는 일이 참된 봉사다. 그래서 지금의 빵보다 장래 살아갈 수 있는 희망으로 자녀들의 장학금을 제공하는 일에 앞장 서는 것이다. 참된 봉사는 자신의 건강한 삶을 확인하는 일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나환우촌 성라자로마을돕기 운동은 내년 5월 50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를 성대하게 개최하려 한다. 1000원의 성금이 큰 기쁨으로 다가오고, 봉사하는 삶의 자긍심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다. 봉사는 건강한 삶의 확인이며, 사랑의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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