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대희년을 앞두고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평위는 평협과 남녀 수도회, 그리고 각 교구 정평위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일반 사회단체와도 연대를 형성해 내년까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여기에서 얻은 성과를 토대로 국회에 정식으로 입법청원하고 국제기구에도 청원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사형 제도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폐지 추세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까지 사형은 극형인 동시에 핵심적인 형벌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오면서부터 각국의 형사 입법은 사형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게 했고 20세기 접어들면서는 점차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로써 1997년 현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는 모두 98개국이다. 유엔과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국제기구와 단체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이다. 80년대 이후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돼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의정서는 인권 규약상의 생명권 개념에 사형 폐지를 당연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올해 유엔 총회는 사형 제도 반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사형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세계 90개국 중 하나이다. 사형 제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3월 25일 회칙 「생명 의 복음」을 통해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고 1997년 완간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도 인간이 회개와 갱생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형 제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사형 제도 폐지 서명 운동은 범국민적인 서명운동으로 확산 돼야 할 것이다.
생명문제는 단지 교회 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형 제도의 존속은 가장 근본적인 인권의 하나인 생명권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년의 근본 정신 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자유와 완전한 해방을 얻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어느 누구도, 사회나 국가의 어떤 권위도 인간 생명을 임의로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께로 생명을 되돌려드리는 것이 희년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2천년 대희년을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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