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돈이 있었다.
조개껍질, 가축, 곡식, 옷감, 소금, 돌조각 등이 화폐로 쓰여졌다. 태초 이래 돈은 사람들의 희노애락에서 풀려나 하루도 자유로울 때가 없었다. 일찌기 기원전 5세기 세계 최대의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좬돈은 모든일의 원동력좭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돈의 혁명가로 불리는 칼 마르크스는 『화폐는 인간의 노동과 생존의 양도된 본질이다. 이 본질은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은 그것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돈은 돈을 부르고, 뜻은 뜻을 부른다』고 성현들은 말했다. 물욕과는 담을 쌓고 사는 고승의 눈에 돈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대각국사는 눈을 감고 이렇게 설파한다.
『그대는 원이방(園而方)이고 천자(泉者)이자 포자(布者)이며 도자(刀者)니라』
돈은 하늘과 땅을 본땄고, 샘과 같이 끝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막힘이 없고, 빈부를 가리는 칼이라는 비유다. 시인은 좀 다른 비유로 돈을 말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칼 샌드버그의 말이다. 『돈은 권력, 자유, 쿠션(방석), 그리고 모든 죄악의 뿌리이며 축복의 합계다』 작은 쇠붙이, 아니면 질긴 종이조각.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물건인데도 사람들은 돈을 보면 『돈이면 다냐?』고 힐난한다.
돈은 죄악의 뿌리며 축복의 합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좬돈이면 전부좭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대구지법이 얼마전 학부모 2명으로부터 촌지 15만원을 받은 초등학교 교사에게 뇌물수수죄를 적용해서 자격정지 1년에 추징금 15만원을 선고했다. 액수는 적지만 교사가 학부모에게서 받은 촌지가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고 어린 학생들을 구박해 돈을 뜯어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죄질이 나쁘다는 게 촌지 교사에 대한 유죄판결의 이유다. 이같은 판결은 교사들의 무분별한 촌지수수 관행에 경종을 울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받은 약간의 돈을 무조건 뇌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보기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학부모가 작은 선물이나 성의를 표시하지 못하는 풍토가 오히려 안타깝기만 하다.
교육당국은 어제 오늘 고질화된 교사들의 촌지수수를 막기 위해 촌지 거부교사 포상과 촌지신고센터를 설치한 바 있다. 참으로 희안한 발상이다. 짧은 생각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촌지 거부교사 우대방침은 무산되고 말았다. 촌지라는 것이 학교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는가. 더 큰 문제는 음성적인 돈의 뒷거래가 정치를 병들게 하고, 경제를 망치며, 서민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데 있다. 서민들은 평생 구경도 하지 못할 거액을 받고도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강변하는 정치인, 공직자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인 등에게 월급보다 훨씬 많은 금품을 받고 하수인 노릇을 한 기자들도 있다. 이들 정경(政經), 정언(政言) 유착비리 관련자들의 죄질이 푼돈을 받은 교사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55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는 돈에 눈이 먼 업주와 돈받고 불법행위를 눈감아 준 관련기관 공무원들의 먹이사슬이 빚어낸 총체적 비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건설교통부 고위공무원들이 한진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포착됐다는 정관계 로비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여러 정황들은 우리 사회의 부패사슬이 얼마나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얽혀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회의 부패사슬이 주는 교훈
참으로 토악질이 날 지경이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다. 국민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업자에게 기생해 불법을 묵인하고 방관한다면 이 나라는 부패온상이나 다름없다. 온통 먹이사슬의 부패 공화국이다. 돈봉투 없이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한군데도 없는 마당에 교육현장까지 법으로 다스리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좬누가 촌지를 받은 교사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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