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을 줄이고 국내입양을 늘려야 한다」「이제 우리도 잘 살게 됐으니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책임지자」「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국내입양은 늘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지난 89년 국내입양만을 전문으로 하는 성가정입양원을 설립해 1300여명에 이르는 아동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바 있다. 국내입양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책을 살펴본다.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
과천에 사는 한연희씨는 아들이 다섯인 「아들부자」다. 그중 20살난 큰아들만 자신이 낳은 아들이고 17살난 둘째는 7살이던 90년에, 26개월된 셋째는 98년에 입양했다. 9살, 10살난 두 아들은 정식입양은 아니지만 현재 한 가족처럼 살고 있다.
요즘 한씨는 사춘기인 둘째의 끊임없는 질문공세에 시달린다. 「왜 우리 부모는 날 키울 수 없었을까요」「왜 엄마는 날 입양했어요 」아이에게 입양사실을 이미 알린 한씨는 늘 성심껏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려 애쓴다. 『그것은 답을 모르는 수수께끼이지. 하지만 너에게 가정이 필요했다는 것만은 사실이야』라고 언제나 아이에게 사랑을 알려준다.
이유순(안젤라.수원 칠보본당)씨와 송문태(시메온)씨 부부. 역시 장남인 현준이 외에 현모(6)와 현욱(3)이를 입양했다. 이씨는 『경험부족으로 첫 아이에게 적절한 양육과 교육을 시키지 못했던 것에 반해 두 아이를 더욱 잘 키울 수 있게 됐다』며 『처음에는 동생들을 귀찮아하던 현준이가 친동생처럼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혼자 자랐을 때의 이기심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한다. 실상 이러한 한국인의 폐쇄적인 혈연의식은 입양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입양을 행복의 열쇠로 만들어내는 이들 입양가정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은 피보다 더 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국내입양의 현주소
입양원에서 제일 「잘 나가는」아동은 「예쁘고 건강한 여자아이」다. 이는 입양이 「아이 중심」이 아닌 「부모 중심」의 극히 이기적인 동기로 이루어짐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건강하고 혈액형이 맞으며 예쁜 아이들만이 국내에서 입양된다. 여아의 경우 키우는 재미가 있고 훗날 호주승계시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남아보다 선호된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외국인들이 장애아를 3~4명씩 입양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사실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98년 국내입양아 1426명중 장애아는 0.4%에 불과한 6명이었으며 2249명의 해외입양아 중 장애아는 37.2%인 846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버려진 아이들을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키우기 위해 입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대부분의 입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비밀입양 또한 두드러진 현상이다. 입양부부의 대다수인 불임부부의 경우 많은 이들이 임신을 가장한 뒤 혈액형이 맞는 신생아를 데려다 직접 낳은 것처럼 친자로 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이후 입양사실을 숨기기 위해 입양기관과 연락을 끊고 아예 이사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하나 이같은 일은 입양 후 관리 부족으로 파양(罷養)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는 혈연을 중시하는 유교문화 외에도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입양부모들 사이에선 「입양을 했으면 앞으로 이사짐을 풀 생각을 하지 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입양전문가들은 해외입양을 제한하려면 국내입양 촉진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부에 강력한 입양촉진대책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부 정책 역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그러나 무자녀 또는 한자녀 가정의 증가 등으로 잠재적인 입양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과 국민의식의 변화가 뒷받침되면 입양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정부는 94년 국내입양을 촉진하기 위해 입양가정에 주택자금과 입양아의 교육비를 지원하기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비밀입양이 일반화된 사회분위기에서 정부의 입양장려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아 입양가정에 대한 양육비, 의료비 지원을 명문화한 입양촉진특례법 역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정상아동의 국내입양도 안되는 현실에 한달 양육비 20만원, 연간 의료보조비 40만원을 제공한다고 해서 장애아동을 맡을 양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입양에 관한 정책 역시 미봉책으로 일관되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언론이 한국은 고아수출국이라고 비난하자 정부는 96년부터 장애아와 혼혈아 외에는 해외입양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94년 이 방침을 백지화하고 앞으로 매년 국외입양을 3~5% 줄여나가겠다고 밝혔으며 이마저 IMF 이후 유보됐다. 입양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 미약한 수준으로 현재 입양기관 재정의 단 2%를 보조해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입양기관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입양수수료가 비싼 해외입양을 부추기게 된다고 입양기관 종사자들은 밝히고 있다.
해결책
입양전문가들은 「국내입양 대상 아동 공동관리제」의 실시가 국내입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대한사회복지회의 고기영 사회복지사는 『성가정입양원, 대한사회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 등 국내 5개 입양전문기관과 25개의 입양지정기관이 입양대상 아동에 관한 자료를 공동으로 관리하면 양부모를 보다 손쉽게 찾을 수 있다』며 『국가에서 입양기관들을 위탁운영하는 입양기관의 통합화 또한 요구된다』고 밝혔다.
호적에 올리지 않는 상태에서 약간의 정부지원을 받고 요보호아동을 돌봐주는 가정위탁제도의 활성화 또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선진국의 경우 당장은 입양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정이 아이를 위탁해 키우다 정식 입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아파트입주권이나 은행대출 배려 등 입양가정에 대한 현실적,제도적 지원 △입양대상 아동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청소년 성교육 강화 △입양된 아동들에 대한 효율적인 사후관리 △공개입양, 양부모 모임과 같은 공개적인 프로그램 운영 등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입양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성가정입양원 이정자 원장수녀는 『공익광고, 홍보, 교육, 입양촉진 캠페인을 실시해 입양이 가져다주는 가정의 행복을 일깨워주고 입양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편견을 불식시키고 편견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입양이 음지에서 나와 사회적으로 제자리매김될 수 있다』며 『불임부부들의 필요 차원뿐 아니라 사랑의 나눔 차원으로 입양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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