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정상은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함께 서명했고, 서로 헤어지며 포옹하기까지 했다. 이는 분명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계기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공동선언은 현재와 미래의 교회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 공동선언은 해방 이후 민족 구성원 대다수의 마음에 자리잡았던 통일염원이 분출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민족적 화해를 향한 무수한 사람들의 염력(念力)이 엉겨서 이룩된 일이었다. 이는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염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큰 정치가 평양에서 만나게 되었다. 새 민족사와 교회사의 기틀은 이렇게 잡혀가기 시작하고 있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서 이룩한 이 공동선언을 통해서 한반도의 상공에서는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해묵은 냉전 체제를 정리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새롭게 일어났다. 이 선언은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화해와 협력을 다져야 한다는 필연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 정상의 만남은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새 역사의 시작이며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하늘이 허락한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화해와 협력은 상호간의 이해에서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몰이해와 오해에서 이해의 단계로, 상호 불신의 구렁에서 서로가 신뢰하는 상태로 전환되어야 한다.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이 다를 수가 없고, 여야나 보수 진보의 대립도 극복되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화합에 관한 과제는 정치권이나 경제계의 문제에만 국한된 사항이 아니다. 화해의 실천에 동의하고 이를 다져나가려는 전 국민적 참여가 요청된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7.4공동성명 이후 화해를 위한 시도가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상이몽 격으로 발표되었던 7.4공동성명은 남한의 경우 유신독재를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고, 북조선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이 통과되어 분단체제는 도리어 강화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우에도 구두선에 그쳤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다지려는 이 시점에서 화해를 위한 지난날의 노력이 실패했던 까닭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실패의 이유는 합의 도출과정과 이를 추진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난날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각각 그 대표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체결에 대한 후속적 동의와 민주적 참여의 기회가 생략된 채 집권자의 독단으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남북한의 합의는 집권자의 독단에 의해서 무산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민족화해를 위해서는 그 논의의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의 화해를 위해서는 뜨거운 가슴과 함께 차가운 머리에 함께 각인된 기억력이 요청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이의 실천을 위해서는 상호 이해와 양보와 인내의 정신이 필수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해와 양보와 인내는 차가운 머리의 소산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남북공동선언문의 실천에 있어서는 국민적 동의와 참여가 진행되어야 한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참여는 우선 이에 대한 지지 서명운동을 통해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운동은 예컨대 「민족화해 실천 1천만 서명운동」 등의 명칭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국민적 동의와 참여를 위한다 하더라도, 이는 결코 「남북공동선언문」의 의의를 약화하거나 이에 반영되어 있는 민족적 여망을 낮추어 평가하려는 의도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 공동선언문에 대한 국민적 동의운동을 통해서 공동선언문의 정당성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민족화해가 일부의 정략적 판단에 의해서 좌우될 수 없는 역사적 대세임을 천명하기 위한 운동이다.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민족화해 정책의 성실한 수행을 촉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이번의 결의를 중도포기하거나 변질시켜서는 안된다는 지속적 압력운동이기도 하다.
이 서명운동은 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는데에 자신이 참여하겠다고 다짐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국민지지서명 운동은 민족의 화해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북녘 형제들에게 대해서 얼어붙었던 자신의 마음, 민족화해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반성운동이기도 하다. 불과 한달을 못넘긴다는 대중의 기억력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해주는 운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비정부기구, 시민운동단체, 학원가나 문화계, 종교계 등이 서로의 힘을 합쳐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한국현대사에서 정의와 평화를 심는 데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서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민족의 화해가 인간의 보편적 구원에 이바지 할 것임에 틀림없다면 이를 위해서도 응분의 노력을 주도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래의 교회사를 바르게 쓰기 위한 운동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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