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땅에 천주교가 들어온지 1896년 꼭 103년이 되는데 이 땅이 개척된 역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860년대부터 근20년간 계속하여 조선북부 지방에는 거의 해마다 재해가 들었는데 살기바쁜 빈곤한 농민들이 분분히 정든 고향을 떠나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 정착한 곳이 황폐한 불모지인 북간도 땅이었다. 당시 청나라 봉금지인 간도땅에는 마음대로 조선 이주민들이 넘어 오는 것을 막았지만 이주민들은 가만가만 월경하여 농사를 짓는 한편 지방관리들의 눈을 피해 인적드문 곳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룩해 갔던 것이다.
북간도 땅에 조선이주민들이 대량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광서 초년간, 즉 봉금제를 폐지한 후 19세기 말엽으로 보아진다. 이러한 역사시기에 가난한 천주교 신자들도 살 집을 찾아 간도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조선이주민들이 처음 간도땅에 정착한 곳은 두만강 중부와 용정 이남 일대이다. 바로 이 시기에 서울 명문 가정의 태생인 김의기가 조선 동학당 창시자인 최제우와 동학당 농민수령인 전봉준의 영향을 받아 호천포와 알미대 일대에서 청년들을 규합해서 동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 회룡 등 곳곳에서도 동학당들이 일어나 그 영향이 심대해 졌으므로 조선 회룡관부에서는 김의기를 잡아들이라는 공시를 내붙였다. 급기야 1885년 김의기는 동학당 농민혁명의 괴수로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제자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가 거의 10년이 지난후인 1895년경 시국이 조금 안정되자 다시 모여 김의기의 유언과 같은 「진리탐색」,「서학」을 다시 의논하게 되었다. 이때 김의기의 친구이며 수제자인 김영렬이 몸을 피해 다니던 중 서학에 호기심을 갖고 동료들과 이별하고 1896년 회룡을 거쳐 함경도일대를 도보로 강행군하여 끝내는 조선원산에 이르러 파리외방전교회 불란서 장 요셉 신부에게서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때는 1896년 5월 17일 성령강림 날이었다.
그는 즉시 진리탐구에 목말라 있는 동료와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간도땅에 돌아와 당시 「서학」이라 하는 천주교의 교리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에 그의 동료 유기룡(로렌조), 최규녀(그레고리오)가 솔선하여 원산에 가서 영세 입교하였고 그 이듬해인 1897년에는 동학당 파산과 함께 진리에 목말라 있던 제자 12명이 김영렬 요한의 길 안내를 받아 도보로 원산에 이르러 세례를 받으니 백신부는 이 12명에게 「북간도의 12종도」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12종도의 이름과 세례명은 다음과 같다. (「간도 천주교 전래사 참조」) 박련삼(루가), 조녀천(말딩), 김성준(안당), 한재흥(요셉), 지유붕(다두), 최문화(분도), 최익세(베드로), 김수렬(방지거), 김종렬(안드레아), 이배선(루이스), 김진오(바오로), 김창섭 (도마) 이다.
당해 12월 원산 백 알로이시오 주임신부는 간도에 첫 교회를 세우기 위해 조선 회룡을 거쳐 중국 삼합에 들어섰으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 삼원봉(영암촌)에 도착하였고 그 이듬해인 1898년 정월 1일에 북간도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12종도가 초기 활동한 지방은 삼원봉과 소부채골(대교동) 회룡지방이었다.
복음의 전파자로 불림을 받은 열정적인 12종도는 북간도 여러 지방에 퍼져나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간도의 천주교회가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서울 교구에서는 원산교구의 백신부에게 간도지방까지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당시 박련삼(루가), 최익세(베드로), 지유붕(다두) 등이 공소건립을 위한 준비사업에 나섰으며 사처로 다니며 찬조금을 모아들였다. 1900년경 백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은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었다.
1898년 대교동의 공소건립과 더불어 영암촌(삼원봉)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1908년 영암촌 공소는 240㎡성당을 짓고 원 아드리아노 신부를 맞아 북간도의 첫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09년 용정에 남 레오 신부가 부임하고 1910년 팔도구에 최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여 북간도 천주교회의 거족적인 발전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북간도에서 제일 처음 꾸려진 학교는 기독교인 이상설이 용정에다 꾸린 「서전서숙」인데 1906년 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05년 천주교인이 용정에다 꾸린 「삼애학교」이다.
1905년 장 고스마, 지 다두, 한 요셉 등의 노력으로 용정촌에 「삼애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들이 직접 국문, 산수, 성경,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1907년 영암촌에 「화룡서당」이 설립되었는데 후에 「덕흥중학」으로 개칭되었다. 이상 대략적으로나마 북간도 지역의 복음화가 시작된 연대와 지방을 간헐적으로 적어보았다. 아래에 훈춘지역 초창기 발전사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훈춘경신은 그 지리적 위치가 특수한 바 3면이 소련과 조선과 잇닿아 있는 삼각지구이다. 우월한 지리적 특성으로 예로부터 조선 이주민들이 모여들어 삶터를 마련했으며 1902년 경에는 2명의 천주교도가 두만강을 건너 훈춘 육도포에 이주하여 훈춘지역의 첫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1905년 연화동 지방 몇 사람이 용정에 와서 원산 백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아 육도포 근방 교세가 크게 불어나기 시작하여 1906년 처음으로 김 베드로 신부와 원신부의 순방을 받아 당해, 자그마한 초가삼간을 사들이고 공소건립을 보게 되었다.
1908년에는 육도포, 연화동, 금당 등지의 교우 100여명이 영세·입교하여 교세는 크게 불어나 김신부와 원신부는 수시로 두만강을 건너와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었던 것이다. 1902년 연길교구에서는 구 가시리오 신부를 육도포에 파견했는데 인하공소를 확장하고 강습소를 세워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구신부는 육도포본당에서 3년 동안 사목하시다가 1924년에 훈춘 시가지에 파견되었고 그 후임으로 홍루치오 신부를 맞고 1926년에는 정책벨도 신부를 맞았으며 1929년에는 마 호노리노 신부를 맞게 되었다. 육도포 초기회장은 김요한이 맡아하다가 그 후임으로 김알베노(별명 도회장) 회장을 맞게 되었다. 이 회장은 열정적인 분으로서 육도포 회장 겸 경신지방 총회장으로 활약했던 분이다. 1924년 훈춘성당이 세워지면서 육도포 지방에서 적지않은 교우들이 훈춘으로 이사했고, 영세자들은 해마다 늘어나 1930년경에는 육도포 가근방 교우 6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당시 육도포에 「안나학교」가 있었고, 금당에 「해성학교」, 희룡봉에 「다수학교」가 있었는데, 낮에는 어린학생들의 배움터로 사용되었으며 밤에는 성인들이 분과와 교리를 배우는 학원으로 사용되었다. 9.18사변이 일어나자 교세는 줄기 시작하여 많은 교우들이 두만강을 건너 조선 경흥에 이사를 갔으며 교회에서 꾸리던 학교들은 부진상태로 문을 닫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1924년 훈춘교회는 구 가니시오 신부를 맞아 발전하기 시작하고 훈춘시가지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교세는 크게 발전하여 1933년 훈춘시가지 중심부에 방대한 토지를 사들이고 성당, 해성학교, 사제관, 수녀지원 복사방 등의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34년 봄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북간도(연변) 지역의 복음화의 첫 시작과 지역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특히 북간도 지역의 복음화는 중국내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조선 원산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점이 특수하며 수많은 선각자들이 피와 땀으로 순교적인 자세로 북간도 역사를 채워왔다는 사실에 필자는 부친의 염원을 이루기 위하여 1988년부터 애써왔으나 아직 너무도 모자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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