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땅 모두가 순교자들의 무덤인 해미성지. 그래서 해미를 찾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신분이 낮아, 살아서도 천대를 받아온 이들.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단지 「예수」를 믿고 그 「예수」를 버리지 않아 처참하게 죽어 간 3000여명의 순교자들이 지금까지도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에 밟히고 있는 해미성지. 당시 군사 요충지였던 해미에서는 100년동안 인근 내포지방에서 잡혀온 수천명의 신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해미읍성 남문으로 잡혀 간 순교자들은 철사줄에 머리채가 묶인 채 「호야나무」에 매달려 헤아릴 수 없는 몽둥이를 맞아야만 했다. 해미읍성 서문 밖으로 끌려 나온 순교자들은 수십명씩 묶여 산 채로 땅에 생매장 당하거나 「진둠벙」이라 불리는 웅덩이에 돌을 매단 채 쳐박혀 죽어갔다. 또한 서문 밖에 있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당하며 머리가 부서져 죽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요하다. 순교자들을 매달았던 300년 된 늙은 호야나무는 철사줄 자국만을 남긴 채 말이 없고 웅덩이의 물결도 평화롭기만 하다. 죽음의 악마가 버티고 있었을 서문 밖은 해질녘 석양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해미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공허함이 감돈다.
수천명의 순교자들이 신분이 낮고 이름도 남기지 않아서일까. 해미성지에는 반듯한 순교기념관이나 성전이 없다. 단지 16m 높이의 「해미순교탑」만이 있을 뿐 지금도 천막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고 지난 1935년에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도 천막성당에 안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해미성당 신자들의 힘만으론 해미성지를 개발할 엄두도 못내고 있던 중 지난해 2월 안상길(사도 요한) 신부가 부임하면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우선 전국 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순교자 3000명 에 해당하는 3000명의 은인을 요청하는 기사(본보 99년 7월 18일자)가 보도된 후 문의 전화와 회원가입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사글세를 살면서도 매달 적금형태로 후원하는 이도 있고 가족 수대로 1구좌씩(1구좌 100만원) 가입한 이도 있다.
특히 익명으로 꾸준히 지금까지 700만원을 봉헌한 이도 있다. 어렵지만 해미성당 신자들도 100구좌를 신립했다. 현재 90%가 모집된 상태. 그러나 경제사정 등으로 포기한 이들을 제외하면 80% 정도. 완납한 이들도 50%에 달한다. 내년 3월 첫삽을 뜰 예정인 해미성지 성전은 현재 설계 심사 중에 있다. 성전은 대성당이 700석, 소성당이 150석 규모로 지어지며 유해참배실, 홍보관 등이 들어설 예정 이다. 특히 홍보관에는 해미성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내포지방에서 붙잡힌 신자들이 한티고개를 넘어 해미 읍성에서 당한 고문과 순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축소한 모형도를 제작, 전시할 계획이다. 또한 무명순교자 들의 이름을 대신해 회원들의 이름을 새겨 보존한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서산시가 해미읍성을 원형복구한다 는 것이다. 이럴 경우 순교와 관련된 동헌과 감옥 등이 복원돼 순례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회원가입 현황을 보면 모두 사는 형편이 고만고만한 분들입니다』그래서 이들이 더욱 고마울 뿐이라는 안신부는 『기념성전공사에만 30억이 넘게 듭니다. 그 외 성전 비품, 홍보관 등에 필요한 경비마련이 걱정입니다.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할 면목도 없고 순교자들의 도움만 절실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립액을 완납한 이들에게 작은 고마움의 표시로 직접 묵주를 만들어 보내고 있는 안신부는 모든 것을 순교자 들의 도움에 의지하면서 은인들의 기도와 관심을 당부 했다. ※후원하실 분=041-688-1122 안상길 신부, 041-688-3183 해미성지관리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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