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요즘 농장에 나가보면, 냉이와 쑥, 두릅과 가죽 그리고 참나물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만사를 접고 깨끗한 양지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캐다보면, 어느새 몇 식구가 몇 차례의 식사에 반찬이나 국거리로 사용하기에 족한 분량의 냉이와 쑥이 모인다. 일어나 두릅에게 다가가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새순을 따서 모아도 본다. 그 싱싱한 모습에 믿음이 간다.
이제 이들은 나에겐 단순한 식품만이 아니다. 남들이 작업을 해서 시장에 내놓은 것을 돈주고 산 것하고, 내가 직접 들에서 채취한 것하고는 느낌의 차이가 많다. 산이나 들에서 내가 직접 수집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어디서 유래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 전 과정을 다 안다. 이들은 나에게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다. 그냥 두면 더 자라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뜨려 온 땅에 퍼져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생명체이다. 그런데 내가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을 위해 그들을 강제로 채취하여 밥상에 올리려 하고 있다.
이들을 먹는 나는 나를 위해 희생된 그들의 생명이 보람된 것이 되도록 살아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매일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생각해보면, 나는 이 땅 위에서 참으로 많은 생명들을 먹으면서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지구 생태계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있고, 그만큼 큰 책임과 의무를 안고 있다.
지구촌의 이 생명체들은 모두 다 살고 싶어하고, 각자 나름대로 더 살아갈 이유가 있다. 인간들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삶을 잘 살다 가는 존재들이다. 나는 나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더 살기를 원하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을 매일 먹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죽음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고 고귀한 의식을 지닌 인간의 일부로 부활하여 이 세상에 존재한 보람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오늘 나의 의식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희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나.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어떤 것인가. 나는 참으로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나.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는 나의 존귀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나. 나의 이웃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있나.
나는 매일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음식 등 많은 것들을 받고 또 받으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아직도 더 가질 것들이 산재하여 관심과 정열을 가지지 못한 것들을 추구하는 데에만 온통 쏟고 있어 살아있음의 기쁨을 인식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서두르고 바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나 않나.
맑은 공기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맑은 물을 맛있게 마시며, 온갖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빠짐없이 세끼 꼬박꼬박 챙기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안식을 누리는 즐거움을 매일 누리고 있건만, 이러한 것에서 오는 기쁨은 안중에도 없고, 강한 자극적인 요소를 지닌 다른 것들을 더 갖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가득 품고 마음의 빈곤과 허욕에 시달리고 있지나 않나. 그렇게 하여 수많은 섭리로 나를 돌보고 계신 하느님을 허탈하게 하고 있지나 않나.
따스한 봄 햇살 아래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먼 산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이 번 봄에는 의식이 좀더 깨어나 한 단계 성숙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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