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말이 있다. 4세기 중엽에서 약 200년간 일본이 임나(가야를 뜻함)에 통치기관을 두어 한반도 동남부를 식민지화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터무니없는 식민사관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요즈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일본의 작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였다.
3·1 독립운동 후에 조선에 부임한 사이또 총독은 1922년 「조선에서의 교육시책의 요결」에서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을 만들어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집요하고 치밀한 우리민족 말살의 의도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 우리 마음의 깊은 곳까지 일재의 잔재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는 만큼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교과서를 왜곡하여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오히려 미화시키려는 일본의 잘못보다 그러한 일본에 타협하고 협조하여 나라와 민족혼을 팔아먹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역사란 바로 나를 알고 나를 세워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는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뜻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시련과 수난을 겪으면서 새롭게 일어선 힘의 원동력은 바로 자신들의 역사였고, 그 역사 속에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손길이 흐르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욕의 역사를 통해 선조들과 만나고 나아가 선조들이 그랬듯이 지금의 나에게도 다가오는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손길을 체험했던 것이다.
성서를 통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일깨워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서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끄집어내고 신학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역사가 단절되거나 왜곡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위대한 사건들을 지금에 삶의 현장에서 의미 있게 재현하여 미래를 비추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현세의 타협적인 삶으로 역사와 단절을 이루어 미래를 어둡게 하였다. 과거의 사건은 바로 지금의 나에 의해서 살든지 혹은 죽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사건은 우리의 후손들에 의해 부활 하든가 혹은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본질은 역동적인 삶이며, 생명 그 자체이다. 역사가 살아 있으면 그 사회가 살고, 역사가 죽게(단절, 왜곡)되면 그 사회도 죽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우리민족의 역사는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손길을 알기 위해서도 먼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교의 교과과정에서 국사 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신학교 시절 국사를 배운 적이 없다. 나중에 우리 사회의 현실에 뒤늦게 눈을 뜨면서 우리에게 있어, 특히 우리 사제들에게 있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학교 교과 과정에 신학과 접목시킨 국사과목이 비중 있게 채택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한, 교리교육(주일학교와 예비신자)에서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구세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예수그리스도라는 인간, 구체적인 유다인으로 육화해 오셨지만, 이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역사 속에 구체적인 흑인 예수로 오시고, 우리 민족의 역사 속으로는 구체적인 한국인으로 오시는 것이 아닐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가 22, 19). 미사 때마다 재현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의 역사적 예수를 오늘날 한반도에 있는 나와 연결시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강한 역사의식을 갖고 언제 어디서든 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의 손길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부활시기를 보내며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한 예수님은 유다인 예수님이 아니고, 도도히 흘러온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한국인 예수님으로 오신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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