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외신을 타고 들려온 한가지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필리핀의 사형수 에두아르드 아그바야니에 대한 형집행 취소 명령이 전화연결이 제때 안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1분이라는 시간 차이 때문에.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25일 비서실장을 시켜 국립교도소에 긴급히 전화를 걸었다. 딸 강간 혐의로 사형이 집행될 아그바야니에 대한 형집행 취소명령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사형집행 5분전이었다.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는 통화중 신호음만 들렸고 전화가 연결됐을 땐 아그바야니는 이미 주사를 맞고 숨진 지 1분이 지난 뒤였다는 것이다.
에두아르드의 사형을 두고 필리핀 내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었다.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며 형집행을 고집하던 필리핀 대통령도 이날 아침 아그바야니의 딸 빙과 테오도로 바카니 주교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의 선처를 다시 한번 눈물로 호소하자 마음이 움직였다.
이번 사건은 사형제도가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터무니없는 제도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준 사례이다. 1분이라는 시간 차이가 생각할수록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판단에 의해 똑같은 한 인간의 생사(生死)가 너무도 쉽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사형제도 존폐 논란은 진부하리만치 오래된 이슈다. 사형제도 존속을 주장하는 이들도 나름의 이유를 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자. 결국 인간의 생사를 인간들이 판단하는 것밖에 뭐가 다른가. 사형제도 존폐문제는 사회질서 유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생명에 관한 문제다. 살고 죽음에 관한 문제이다.
"제 아버지를 용서해 주시고 형기를 낮춰주세요. 우리는 그가 석방되기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도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던 딸의 간절한 한 마디. 세상을 그래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악을 또 다른 악으로 갚는 '빗나간' 정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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