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희 주교의 갑작스런 선종은 목자 잃은 안동교구민들의 가슴 속에 커다란 빈자리와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러나 장례미사 후 신자들 사이에서 번져나간 「2만5000원」의 이야기는 박주교가 신자들에게 항상 보여줬던 잔잔한 미소 만큼이나 따스한 여운으로 빈가슴을 채워줬다. 그가 남긴 것. 각종 책자들과 사목관련 자료들을 제외하고 박주교가 남긴 것은 선종 당일 입었던 등산복 바지주머니의 단돈 2만5000원. 몇 십만원이라도 든 통장 하나도 없었다. 집무실엔 축일 등에라도 받았음직한 그럴듯한 장식품 하나 없이 난 화분 몇 개만이 박주교의 검소한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청빈의 모범. 고(故)박석희 주교에게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그는 평소 자신을 위해서는 천원짜리 한 장도 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교구청에서 나오는 식비와 교구장으로서 받는 활동비는 전부 비서일을 맡았던 최명자 수녀가 관리했고, 박주교는 그때그때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을 얻어갔다. 주교 정복 외에 사복이라고는 밭일할 때 입는 낡은 셔츠 몇 벌 뿐이었고, 유일한 사치품은 등산복. 그것도 최수녀가 부임 이후 직접 사다드린 것이다. 어느날엔가는 박주교가 이발소에 가서 이발 후 계산을 하려 보니 지갑 속에 있는 돈은 달랑 천원짜리 3장만 있더란다.
평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습관 덕분에 주인에게 사죄하고 다시 교구청에 들러 돈을 가져다 준 웃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박주교는 화령본당 등 어려운 살림으로 고생하는 본당 이나 공소를 방문할 때면 용돈을 모두 털어 작은 선물이라도 꼭 사갔다.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활 안에서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또 틈날 때면 교구청 뒤 텃밭에서 손수 거름을 지어 나르며 감자며 각종 채소 등을 키웠고, 농작물을 수확하면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이나 나환우 양로원인 다미안의 집 가족 등의 이웃과 나눠먹었다. 일과의 대부분도 온전히 교구민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특히 올해는 거의 매주말 교구 내 본당과 공소를 방문해 고해성사와 미사를 직접 집전했고, 신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로 시작되는 성가가 떠오른다. 박석희 주교의 교구민을 위한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민들의 진정한 벗으로 살다간 그의 삶은 열매는 물론 몸통이 잘려나간 밑둥치까지 아낌없이 쉼자리로 제공한 고목 나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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