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임충신이고 올해로 아흔 다섯입니다』
한국 교회 최초로 사제 수품 70주년을 맞은 임충신 신부. 서울대교구가 사제수품 70~50주년을 맞은 원로 사제들을 위해 마련한 축하행사에서 임신부는 이렇게 첫 인사말을 건넸다.
기자는 어떤 말이 계속 이어질지 사뭇 궁금해졌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사제로서의 길을 지켜왔기에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임신부는 이러한 기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참석자들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웃음과 감탄사를 바꿔가며 연발해야 했다.
그는 이날 과거 일제 치하 때 사목자로서 겪었던 일화 한토막을 소개했다.
내용인즉 황해도 본당 신부로 있을 당시 일본 군인이 찾아와 본당 신자들의 비리를 고발하라고 위협했고, 이 군인은 직접 고해소까지 들어와 신자들이 죄 고백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자칫하면 신자들이 죄다 일본군에 끌려갈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고 임신부가 거절하면 그가 끌려갈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 당국자는 결국 화난 채로 가버렸다. 임신부가 교회 전례를 모르던 이 일본 군인을 보기 좋게 속였던 것이다.
임신부는 신자들이 고해소에 들어와 죄를 고백하기 전에 바치는 기도문을 끝내면 곧바로 내보냈다. 영문을 모르던 일부 신자들은 다시 죄를 고백하려 했고, 그 때마다 임신부는 『당신의 죄를 사하였으니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 부분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제의 소임을 다하면서도 목숨걸고 신자들을 보호한 것에 대한 감동의 표현이었다.
이날 임신부는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인데도 20여분 넘게 선 채로 인사말을 이어갔다.
강산이 변해도 수십 번 변한 숱한 세월 동안 교회 건설에 온 몸을 불사른 생생한 노(老) 사제의 회고담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기자는 얘기를 들으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임신부와 같은 원로 사제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이처럼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는 진리를 다시금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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