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거른 식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내게 특별한 좌우명이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말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식사를 거른 적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은 집에서 간단히 하고 점심과 저녁은 학교 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은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학교 식당의 밥이 내게는 그렇게 맛날 수가 없으며 오후 5시만 넘으면 식당에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밥에 대한 애착이 너무 원초적이어서 창피할 정도이지만 나는 이렇게 늘 밥을 기다리며 산다.
나의 이 식욕 덕분에 내 몸매는 누구의 말에 의하면 르노아르의 그림에 나오는 모델 같단다. 그래서 나는 늘 체중과의 싸움을 견뎌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내 몸은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이기 때문에 왕성한 식욕을 만족시켜가며 이 몸매라도 유지하려면 일주일에 세 번은 체육관에 가서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끼 식사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이 정도 대가는 기꺼이 치를 수밖에.
그런데 지난 주 나는 40평생 거른 식사횟수보다 더 많은 식사를 단 3일 만에 거르게 되었다. 3일 동안 한끼도 못 먹었던 것이다. 장염에 감기몸살이 겹쳤는데 고열과 설사 앞에서 그 왕성하던 식욕이 맥을 못 추었다.
급기야 탈진에 이르러 입원까지 하게 되었는데, 비로소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한편 원망스럽게 여기던 나의 식욕이 건강의 소중한 표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가 진행되면서 기운이 좀 나자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 손님은 바로 밥맛이었다.
식욕에 시달리고 몸매관리에 고달파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이여, 밥맛이야 말로 주님이 내려주신 은총입니다. 왕성한 식욕을 사랑합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