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지옥처럼 캄캄한 2000미터 아래 지하 갱속입니다. 여기는 육신을 위한 그리고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는 총없는 전선이옵니다.
어제는 동료를 만나니 제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나하는 생각을 오늘도 수없이 합니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지만 아침에 보고 온 식구들과 높은 하늘, 맑은 공기를 다시 한번 보고 느끼고 싶어합니다. 태양을 그리며 오늘도 하루를 지내는 인생 두더지들이옵니다.
도시락을 열면 탄가루가 더러 떨어지겠지만, 어두운 곳이라 잘 보이지 않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시원한 선풍기를 쐬가며 상큼한 냉면 한 그릇 후루룩 먹고 싶지만, 아내의 손길이 머무는 이 음식을 더 맛있게 먹도록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내의 정성과 사랑을 그리고 당신의 더 크고 큰 은혜를 이곳에서도 꽃피우게 하시는 하느님,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몇 시간만 무사히 넘기게 해주십시오. 오늘 저녁은 큰 녀석과 레슬링을 해볼 작정입니다.
「아버지, 나 큰 학교 안 갈 테니 굴 속에 들어가지 마」하던 큰 녀석이 벌써 5학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더 깊은 갱 속에 머물더라도 그 속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영진 신부님의 「밀가루 서말짜리 하느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께 올리는 정성된 이 편지를 읽고 저 혼자서 보기 너무 아까워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농촌에 살았기 때문에 광산촌에 대해 모릅니다. 그러나 이 편지로 인해 광부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광부님에 비하면 너무 편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맛있는 식사가 나옵니다.
식당이 무너지는 걱정은 전혀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밝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식사합니다.
형제애로 똘똘 뭉친 신학교라고 하지만 가끔은 늘 보아왔던 동료이기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광부들처럼 동료를 보며 하느님의 현존, 그리고 저의 현존을 느끼는 경우가 적어 부끄럽습니다. 광부처럼 인생을 전쟁으로 여겨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사는 것 같아 더욱 부끄럽습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광부님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매일 저녁 큰 아드님과 레슬링을 하실 수 있길 두손 모아 기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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