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둔 12월 30일.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전국의 5개 구치소에서 스물세명이라는 생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셌고 특히 교회는 교정사목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던 터였다.
충격이였다. 새정부 출범을 2개월 남짓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에 많은 사람들은 2개월만 집행을 연기해도 될 일을 서둘러 집행해 버리는 저의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필자가 잘 아는 한 사제는 받은 상처로 인해 크게 앓아 누울 정도가 됐고 사형수를 돌보던 어느 수녀는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한때는 사형수였으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새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네가 사람을 죽였기에 너는 죽어야 한다』는 보복심리로 자행된 또 다른 살인을 함께 저지른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가톨릭신자 대통령이 됐다는 증거를 보여주듯 아직까지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도 개신교신자였다. 설마 했다가 당한 충격이기에 현대통령에게 보내는 의구심 또한 없진 않지만 적어도 사형집행 만큼은 없으리라 확신하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력이 있기에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마터면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탈 수 있는 현 대통령을 온갖 허울을 덮어 씌워 형장의 이슬로 보낼뻔 하지 않았는가?
이젠 그런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사형제도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반생명적인 제도일뿐 아니라 범죄예방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사형제도가 존치돼 있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줄어들고, 폐지됐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늘지 않는다는 통계는 이미 여러나라 통계결과로 나타난바 있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오판의 가능성이 상존하기 마련이고 일단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오판을 수정할 어떤 가능성도 남겨지지 않기 때문에 사형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어떤 법학자는 사형수는 범죄를 저지를 그 순간 흉악범죄인이지 이미 수십년이 흘러 새순과 같은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니기에 그를 사형시킨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길지 않은 역사만 되돌아 보아도 사형제도는 정권에 의해 수없이 악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강도 살인죄와 같은 흉악한 범죄로 인해 사형집행된 사람들보다 공안 사범 즉 국가보안법, 반공법, 비상조치령 등으로 인해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로도 이제 더 이상의 사형제도는 필요치 않음을 입증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에 합당하게 살 권리, 즉 생명권을 갖고 있으며 이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므로 인간과 국가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사람을 죽였기에 너도 죽어야 한다」는 악의적인 보복심리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해 버릴 것이 아니라 사형제도가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한 죄 값을 치르게 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국민의 정부는 출범 후 지금까지 사형집행을 미뤄왔다. 그러나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 사형제도를 존치시키지 말고 이번기회에 아예 폐지하는 용단을 내려주길 기대해 본다.
120여개 국가에서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된 상태이며 갈수록 폐지국가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국가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될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폐해성을 가장 잘 아는 현정부가 나서서 조속히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과거 김대통령이 받은 사형구형의 허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정부가 사형제도를 방치해 둔다면 그것 또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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