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6·25라는 가슴 아픈 동족상잔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화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외세에 의해 조국이 두 동강나고, 그것도 모자라 영문도 모른 채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지난 50여 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 놈의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과 북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바로 그 이념의 노예가 되어 형제를 적으로 간주해 왔다. 바로 거기에 국가적 에너지를 너무나 많이 쏟아 부어 왔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채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독재 정권을 초래하여 많은 문제를 복합적으로 일으켜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세월의 온갖 몰이해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작년 우리민족의 미래에 가능성을 열어준 남북정상 회담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희생과 죽음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도 그동안 수많은 작은 그리스도인들과 정의 구현 사제단의 활동을 통해서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동참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2년 3월 춘계 주교회의에서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그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민족의 화해는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남북정상 회담 당시 전 세계가 보여준 관심은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민족의 화해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속사정을 보면 지난 50여 년의 분단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의 장벽, 잘못된 지역감정,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 사회는 수없이 찢겨지고 갈라진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화해라는 문제는 비단 남과 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민족 내부의 전반적인 화두가 되어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본래의 역량과 저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때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화해를 위해서 노력하고 고뇌하고 최선을 다하는 교회의 모습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이 땅에 전하는 진실한 모습이 아닐까?
1988년 하면 대부분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을 연상하지만 나에게는 남다른 진한 감동의 기억이 있다. 1988년 7월 17일 경북 상주지구 신자 1,000여명이 광주 망월동 묘지 참배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주 서문동 성당 보좌신부로 있었던 나는 이 행사의 준비단계에서부터 신자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어떤 일부 신자들은 성지순례도 아니고 왜 일반 묘지 참배를 하러 가느냐고 반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기꺼이 또한 당연하게 그리고 기쁘게 망월동 참배를 받아들였다.
답사를 하면서 광주교구와 협의한 내용은 상주의 1,000여명 신자와 광주의 300명 정도 신자가 함께 망월동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광주 신학교 운동장으로 이동하여 만남의 잔치를 한바탕 열고 행사를 마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준비되면서 7월 17일 당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 날 비가 온 것이다. 낭패였다. 신청한 사람들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신청한 대부분의 사람이 모였다. 특히 걱정했던 멀리 떨어진 공소지역의 신자들까지도 빠짐없이 모였던 것이다. 20여대의 버스마다 화해를 주제로 한 현수막을 내걸고 88고속도로를 지나 광주로 향하였다. 20여대의 버스가 광주시내로 들어갈 때 빌딩마다 사람들이 내다보며 박수를 치기도 하였다.
그때 나는 우리에게 지역감정은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당시 상주지역의 많은 신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찢겨진 상처를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풀어나가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는 의식이 가득차 있었다. 참으로 멋진 신앙인의 모습이요,
멋진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나는 보았었다. 이제는 우리들의 찢겨진 상처가 더 이상 정치판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우리 교회가 보여 주어야 할 진정한 모습은 신자수를 늘려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고 우리 사회 곳곳의 찢겨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화해를 위해 온힘을 기울이는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세자요한처럼 이 땅에 완성되어야 할 하느님 나라의 터전이 될 화해의 삶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실천해야 할 최대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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