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한번쯤은 무심코 흥얼거리다 제풀에 놀라는 노래가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어린 시절 기억으로 6월 25일만 다가오면 학교는 며칠 전부터 웅변 대회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다 해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6월 25일 아침 조회는 평소보다 길게 진행되곤 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빨갱이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또 그 일을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되며 커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긴 훈화를 듣는다. 이어 학년별로 웅변대회에서 우승한 학생 몇이 교장선생님께서 훈화하시던 그 자리에 서서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악을 쓰는 웅변을 듣고 난 후 며칠 간 음악시간마다 연습했던 6·25 노래를 전교생이 목청껏 부르던 것이 지난 날 초등학교의 6·25 아침 풍경이었다.
어릴 적 순수함은 잃어버리고 키만 대나무처럼 훌쩍 커버린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씁쓸함을 넘어 비애에 젖는다.
『6·25의 참상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또 그 전쟁을 일으킨 원인제공자들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하는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린 마음에 꼭 그렇게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찌르자」는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야 했을까하는 의아심은 지울 길이 없다.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이기에 느낄 수 있는 짧은 생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이 오늘날 나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은 누구나 쳐서 무찔러야 되는 상대로 인식하는 삭막한 세상을 만든 것은 아닌지 자꾸 반문하게 된다.
성서 상에서 전쟁은 이 세상에 지속하는 현실이며 악으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사탄 사이에 일어나는 영적 투쟁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당신백성을 위해 당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악을 대항해서 싸우시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죄지은 당신백성들을 치시고 심판하는 임무를 위해 바빌로니아나 느부갓넷살 같은 침입자를 파견하시기도 한다. 이처럼 당신 백성을 위해 또 죄인을 대항하여 싸우는 하느님의 전쟁의 최종목표는 현세적인 승리가 아니다.
이 마지막 전쟁의 심오한 성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예수께서는 당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인간적인 폭력도 사용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전쟁은 사탄과 세상, 그리고 악에 대항하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이 전쟁에서 승리하셨다.
예수께서 몸소 수행하신 이 전쟁은 오늘날 교회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는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이 전쟁 속에서 교회는 혈육의 원수를 대항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탄과 그 동맹군을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서 치르는 전쟁의 무기 또한 지상의 무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무기, 사랑과 나눔, 일치와 화해 같은 그리스도교적 덕행이 그리스도 병사의 무기이다.
그리스도인이 치러야 할 전쟁이 세상과 다른 것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스승 예수의 모범을 따라 당당히 정의롭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반목과 분열의 반세기가 화해와 일치의 세월을 통해 새로운 예루살렘 안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길 바란다.
요즈음 어린 시절의 6월에 불렀던 노래 대신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푸른 6월의 하늘에 울려 퍼지는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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