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잠언에서는 『마음이 편안하면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타면 뼛속이 썩는다』(14장 30절)고 말하고, 이어서 『「나는 마음에 거리낄 것 없다. 나는 죄가 없이 깨끗하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20장 9절)고 말한다. 죄가 있는 사람은 뼛속이 썩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한데, 우리 모두는 이 죄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죄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얼굴을 들 수 없게 하고, 몸과 마음을 움츠려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를 작게 하고 어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힘을 상실하게 한다. 누군가가 우리 안에 들어있는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면, 우리의 마음은 불안해지고 용기를 잃게 되며 한없이 작아져 구석으로 숨어들고 싶어진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어떤 새로운 창조적인 일을 시작하거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책임감 있는 일을 행할 힘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죄의식은 상당히 파괴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들 중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가장 거룩한 기도인 미사를 드리면서도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의 사함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숙연해지고 몸과 마음을 추슬러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때로는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매사에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과제인데, 죄의 인정과 용서를 청하는 무거운 의식이 언제나 앞자리에 있다.
융(Jung)을 비롯한 정신과 의사들의 임상경험에 의하면,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한 신자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이들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 이른 것은 잠재된 죄의식에 오랫동안 시달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완벽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이 소심하게 하고, 작은 잘못에도 죄의식을 크게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런데 완벽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교만이 깊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완벽하게 살아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앞서고자 하는 욕구가 그를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완벽하게 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소심해지고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어 마침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은 잘못된 생활로부터 벗어나서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지 죄의식에 짓눌려 시달리다가 마침내 기운을 잃고 사멸해가기 위함이 아니다. 죄의식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자극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 된다. 그 이상 우리에게 남아서 우리를 움츠려들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잘못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진단해보자. 10년, 20년 전에 행한 잘못 때문에 아직도 죄의식에 사로잡혀 오늘을 어둡게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다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잘못을 언제까지나 기억하여 그가 다시 일어나 활발하게 살아가는 데에 방해하지나 않았는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본 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용기와 힘을 내어 오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과거에 지은 죄에 짓눌려 오늘을 어둡게 살아간다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잘못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지, 그것으로부터 시달리기 위해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그래서 신앙은 우리를 살리는 은총의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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