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께서는 이제 귀국하시어 고향에 안주하셨지만 제 생각으로는 오히려 더 깊은 향수병에 잠기시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됩니다.
고향은 타향같고, 타향은 고향같고, 긴긴세월 고국을 떠나셔서 한국에서 두고오신 고향을 그리셨는데, 이제 또 제2의 고국을 멀리하시고 귀국하셨으니 한국이 그리워 다시 타향살이처럼 향수에 젖으실 것 같습니다. 고국 문화에 서투시고 산천초목과 지형이 낯설 때마다 한국을 그리워하시며 특히 인천, 아니 답동 3번지에 주교님의 체취가 배어있는 안방이 그리우시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주교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즈음엔 철없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저도 늙어서 세월과 풍상에 시달린 고목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제 일생이 아무리 험난했고, 모진 풍상을 겪었어도 확신할 수 있는 복이 꼭 한가지 있습니다. 답동 근처를 떠나지 않고 사는 일입니다.
유년시절을 답동성당 마당에서 뛰어놀았고, 경내로 들어가서는 신비스런 정적에 숨죽이며 동무들과 소근댔으며, 2층으로 올라가서는 종탑줄을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월미도 앞에 선착된 배구경(그때는 그랬습니다)을 하면서 뻘건 황토길 언덕(지금의 가톨릭회관)을 오르내리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답동성당에 교적을 두고 사는 일을 복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교님의 성안을 소급해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어느덧 주교님의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듯 하더니, 근년엔 눈썹까지 하얗게 희여지셨습니다. 마치 산신령 같으신 모습에 절로 숙연해질 때가 많습니다.
주교님께서 오시고 얼마 뒤에, 백석에 「하늘의 문」묘원을 조성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선조 때부터 내려오던 인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성묘 때 상석 위에 떡과 포며 술을 진설 해놓고 절도 했습니다. 교우들 간에 찬반이 구구했습니다. 그때 주교님께서는 조상을 그리면서 생전에 즐기시던 주과를 놓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문화를 높이 사셨습니다.
또 어느해 세례식을 거행하신 후에 강론을 하셨던 내용을 기억했습니다. 해마다 많은 입교자가 들어오는데, 교회는 넘치지 않으니, 입교자와 냉담신자의 함수관계를 말씀하시면서 슬픈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또 세례만 받았다고 천국에 드는 것은 아니라시며, 오히려 입교하지 않았어도, 죄없고 욕심없는 삶을 살아가는 오지의 화전민을 표본으로 이르셨습니다.
순박하고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을 아름답게 보시는, 성자 같으신 깊은 마음을 우러러 존경하옵니다. 주교님의 그 많은 일화를 저의 어눌하고 무딘 필설로는 열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명부에는 잘 기록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주교관도 낡고 삐걱거리던 목조건물이었습니다. 그 외 사제관이며 사무실도 물론이었습니다. 그동안 신개축을 거듭하셨고, 가톨릭회관, 교육관, 근래에는 박문초등학교까지 현대식으로 증개축 하셨으며 오랜 숙원이던 신학교 건립까지 열거 할수 없는 공사를 끊임없이 추진하셨습니다. 『마치 건설회사 회장님이셨더라면…』하는 망상까지 떠오르게 됩니다.
말씀은 부드러우시고, 마음은 따뜻하신 분께서 불도우저 같은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주교님 덕분에, 저희들은 물론이려니와 후손들까지 잘 이용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보다 더 뜨겁고 값진 말이 사전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주교님 이제 고향에 가시거든 노후는 편히 쉬시면서 아름답고 영성적인 사색으로 더 깊은 행복에 취하시기를 저희들은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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