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제2대 교구장을 역임한 김남수(안젤로)주교의 서거는 수원교구민은 물론이요, 전체 한국천주교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김주교의 서거는 한국교회 근세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으로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교회를 이끌어 온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아픔을 더하고 있다.
김주교는 1974년~1997년 교구장 재임 23년 동안 시골교회인 수원교구를 명실상부한 국내 두 번째 교구로 성장, 발전시킨 분이다.
특히 김주교는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70년대부터 90년대 후반까지 격동기의 애환을 모두 겪어낸 한국천주교회의 주요 지도자중 한 분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계란이 먹고 싶어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는 김주교는 성소자 배출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부은 교회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신학교 설립을 통한 사제성소 증가로 교구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익히 알려진 그분의 업적이다.
그보다 기회있을 때 마다 줄기차게 시도한 「아이낳기 운동」이야말로 그분의 혜안이 더욱 돋보이는 점이다.
낙태방지는 물론 신자증가, 성소자 증가로 이어진 결과를 낳은 「아이낳기 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김주교의 지혜로움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교회의 본 모습은 겸손해야 합니다. 영광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라던 김주교의 평소 가르침이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주교회의 의장이 된 이듬해(1988년) 4월 「전환기 교회의 역할과 진로」라는 주제로 가진 본지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힌 김주교는 더불어 『사제는 덕행으로 존경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은 자」들인 우리 모두가 지금 이 땅에서 당장 행해야 할 실천강령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김주교가 은퇴 이후 열정을 쏟아온 「북방선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한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구장 정년제에 따라 만 75세가 되면서 기꺼이 후임 교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병석에 눕기전까지 직접 중국을 오가며 불태운 선교열정이야말로 김주교가 우리 모두에게 보여 준 신앙인의 길, 참 삶의 길일 것이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김주교의 이러한 모범은 오직 참된 신앙인이요 참된목자로서 하느님과 그 나라 확장을 위해 송두리째 자신을 바쳐 성인의 삶을 사신 것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김주교님께서 하느님품 안에서 영복을 누리시며 한국교회를 천상에서 지켜주시기를 두손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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