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가 각계 인사들을 포함한 「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를 공식 출범시킨 것에 대해서 우리는 원칙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발표된 의사윤리지침이 생명윤리와 관련된 매우 의미심장하고 미묘한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의료계의 강경한 주장들을 담은 문건으로 제시됨으로써 많은 비난과 반대 여론에 봉착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이번 협의회 구성이 갖는 의미는 원론적인 면에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의회를 구성한 근본 취지에 대해서 최소한의 의혹은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의구심들이 앞으로 협의회의 운영을 통해서 해소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닌 의구심은 과연 의료계가 이 협의회를 통해서 각계의 의견을 성실하게 수렴하고 참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 생명의 문제는 비단 의료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나아가 신학과 윤리의 문제이며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건설과도 깊이 연관된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 문제에 관한한 최대한의 신중함과 사려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야 하며 티끌 한 점만큼이라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 결코 선택해서는 안된다.
협의회가 단지 그동안 격렬하게 노출됐던 윤리지침에 대한 반대 입장을 무마하거나 희석하려는 의도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같은 자세를 즉시 벗어 던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의회의 구성원 중에는 의사들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 계층의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가톨릭 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는 신학자, 의사들도 여러 명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추측하건대 이들의 참여는 협의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를 결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참여는 협의회가 진지한 자세로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현장이 안고 있는 많은 과제들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논의, 검토하고 결정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무의미하고 무익한, 단지 죽음의 연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인위적인 생명 연장에 대해서 교회는 윤리적인 의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의사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빙자해 추호라도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제도와 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의 수호는 교회의 가장 소중한 사명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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