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구에서 부제 한 분의 사제서품 전례가 있었다. 성인호칭기도가 시작되자 모든 분들은 무릎을 꿇었고, 수품자는 제단 밑바닥에, 마치 뉘어진 십자가처럼 엎드렸다.
수품자를 멀리 바라보면서, 내가 사제로 수품되기 전에, 영성 지도신부님께서 하신 당부가 문득 떠올랐다.
『미카엘 부제님, 사제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당신에게 꼭 두 가지만을 부탁합니다. 하나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땅과 같은 마음으로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십시오. 다른 하나는, 미사를 드리기 전에, 이 미사가 오늘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드리는 미사라고 생각하고 드리십시오』
미사에 관한 당부 말씀은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전례의 삶 속에서 나를 의식적으로 깨어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다른 하나, 땅과 같이 살라고 하신 말씀은 분명 겸손하게 살라는 뜻일 것이다. 겸손이라는 말은 라틴어 「humus」에서 나왔고, 그 말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겸손이란 땅과 같은 삶을 암시한다. 땅은 모든 이들에게 짓밟히지만, 모든 이를 지탱해 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받쳐주고 있는 이 땅에 모든 것을 내다버린다.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다 받아들인다.
세상의 논리와는 반대되는 이런 땅과 같은 겸손의 삶!
이것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선택했던 삶의 길이 아닐까? 성인호칭기도가 끝나가고 있다. 새로 수품되실 사제께 이런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사제여, 우리가 선택한 삶을 겸손과 인내로 책임 있게 살아가기를 저뿐만 아니라, 당신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오로의 말씀 한 구절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살아있지만,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갈라 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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