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500만 톤 이상의 곡물을 수입해서 먹고살고 있는 우리의 곡물 수입 과정을 알고 있는 것도 이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5만 톤 화물선 300대를 동원해야 이 정도의 분량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지금부터 수입계획, 계약과정, 운반과정, 식품으로 각 가정에 공급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세계 식량계획(WEP)에서 권하는 곡물 비축량은 그 나라 국민이 최소한 60일을 먹을 수 있는 분량 이상이다. 세계의 곡물 비축량도 60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계의 곡물 비축량이 전 세계 국민이 60일 이상 먹을 수 있는 분량이면 곡물 가격이 안정되고 그 이하이면 오르게 되는데, 그 날수가 적어질수록 점점 더 다급해진다. 그 이유는 곡물 생산국에서 소비국까지 운반하는 데에 최소한 60일은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비축하고 있는 곡물량이 60일 이상 충분히 여유가 있으면, 곡물을 내다 파는 나라에 가서도 여유가 있다. 비싼 것과 품질이 나쁜 것은 피하고,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것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비축량에 여유가 줄어들면, 품질과 가격을 고려할 여유도 점점 줄어든다. 최악의 경우에는 품질과 가격에 상관없이 있는 대로 매입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곡물 시장은 미국의 시카고이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곡창지대에서 생산한 곡물의 거래를 이곳에서 한다. 곡물수입계획에 따라 우리 정부의 공무원 또는 수입상인이 밀 5만 톤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에 갔다고 하자. 이곳에서는 모두 경매로 물품을 사고 판다.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영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도 공무원이나 수입상인이 이미 와있다. 미국의 곡창지대 중의 하나인 캔사스의 어느 농가에서 보내온 샘플을 내보이며 경매사가 이들 앞에서 가격 경쟁을 시킨다. 가장 많은 돈을 가장 좋은 조건으로 주겠다는 사람에게 낙점 된다. 일본에서 온 상인이 톤당 150 달러 준다고 하고, 중국 상인은 160 달러, 한국 상인이 다시 170 달러, 일본 상인이 다시 180 달러, 다급한 러시아 상인도 돈이 궁함에도 불구하고 톤당 190 달러를 부른다. 가격은 자꾸만 오른다. 마침내 시일을 늦출 수 없는 한국 상인이 200 달러를 부르자 모두들 잠잠해진다. 톤당 200 달러에 5만 톤, 모두 1000만 달러이다.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하자.
물품은 캔사스 농가들에 있다. 어느 한 농가에 5만 톤이 모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한 농가가 가진 경작지가 대략 가로 세로 1km, 약 100ha 정도 되고, 이 정도의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량은 넉넉잡아 ha당 5톤 - 실제로는 이보다 못하다 - 모두 500톤이다. 5만 톤은 100가구에서 1년 동안 애써 농사지은 것을 모두 모은 양이다. 면적으로 환산하면, 100㎢에서 생산한 양이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7분의 1이 조금 더되는 면적의 경작지에서 생산된 양이다.
농부 한 사람이 1㎢의 경작지에 농사짓는 일은 모든 것을 기계로 한다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트랙터를 점검하여 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한 후,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를 들고나서면, 하루 종일 혼자서 외로움, 뙤약볕, 잡념, 불평, 고달픔 등과 싸워가면서 넓고 넓은 땅을 갈고 비료를 뿌리고, 씨앗을 심고, …일은 끊임없이 연결된다. 트랙터가 고장나기라도 하면, 어지간한 것은 스스로 고쳐야 한다. 수십 ㎞ 떨어져서 살고 있는 전문 기술자를 부르려면 돈도 많이 들고 그 날의 일을 못하고 공치고 만다. 고장나지 않을 좋은 성능의 새 트랙터는 엄청나게 비싸서 살 엄두를 낼 수가 없다. 몇 년 농사지은 것을 모두 주어도 살 수 있을까 말까 이다. (지면관계로 다음 호에 계속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