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간의 재능과 창의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지배하고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세기 인류는 핵에너지를 발견, 삶의 질적 향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체험하였지만 동시에 그 핵에너지가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실존적 위협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에너지가 인간의 교만과 통제되지 않는 욕구에 내던져질 때에 이는 무서운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철저하게 위협하고 나아가 파멸로 내던져버리고 말 것이다.
오늘날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놀라운 발전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숱한 난치병이 극복되고 수명은 연장되면서 삶의 질적 향상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곧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전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전망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이 함께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생명으로서의 인간 배아가 철저하게 파괴 유린되고, 맞춤 인간의 시대를 예고하는 등, 이러한 작태들이 인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든지 인권은 한낱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치부되는 시대에 이미 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문제가 야기하게될 최종적인 결과는 결국 비극이다. 인간 생명이 파괴되고, 조작되는 현실이 극도로 심각하고 불안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만연되면 그 결과로 양심 자체가 어두워져서 인간 생명의 기본적인 가치에 관한 문제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되고, 결국은 실제로 인간의 생명권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의학 용어로 잘 포장되어 생명의 초기 단계에 있는 인간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아무런 법적, 윤리적 통제도 없이 인간 생명이 도구로 전락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인간 생명의 가치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생명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면 여기에 절대로 간과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인간을 위한 발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희생을 전제로 하거나 인간을 도구화시키는 발전이라면 그 자체로 그 의미는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생명과학 발전의 윤리적 한계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와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덕적 가치들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이 가치의 기초는 당연히 인간 존재의 진리에서 흘러나오며,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가치는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다수의 것도 아니며, 국가가 만들어 내거나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만 하는 가치이다.
이 가치의 보호와 존중을 위한 일차적인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곧 나라의 지도자들이다. 국민과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그들은 특히 입법 수단을 통해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용감한 선택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법이 인간 생명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때에, 입법자들이 생명 보호를 위한 자기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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