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년대를 향하면서 세계교회는 「쇄신과 화해」의 물결 속에 한바탕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그렇다, 교회는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하고 그리고 하느님과 세상과의 화해를 청해야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교회는 이제 무엇을 쇄신하고, 누구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인가? 필요할 때만 「아버지」를 불러대고 필요치 않으면 쉽게 잊는 평신도의 기복적인 신앙관, 가족주의 의식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수도자들의 폐쇄성, 아직도 유교문화권의 남성 우월주의 의식 안에 맴도는 성직자의 독선독주, 바로 이런 것들이 쇄신되어져야할 것들이며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상호간의 화해를 청해야할 것들이다.
2000년 3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참회 미사」의 예식을 통해서 7가지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과 인류 앞에 용서를 청하였다. 그중 특히 여섯 번째는 바로 「여성의 존엄성과 인류의 일치를 거스린 죄」로서 우리 한국교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유교문화와 현대기술문명사회 안에 소외된 계층(여성, 노인, 청소년, 실업자 등) 그리고 민족분열(남북과 동서)과의 화해를 위해서 대중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조직을 통해서가 아닌 사랑을 통해서 교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민족주의 문화의식을 초월하지 못한 채, 성직자끼리, 수도자끼리, 평신도끼리의 동아리의식을 강하게 표방하고 나선다면 우주적 생명관에 근거한 「우리」민족문화의 이 한 덩어리 개념은 우리밖에 있는 다른 사람을 그리고 다른 것을 포용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적 사고에 머물게 된다면 한국 교회 지체들 간에도 가르고, 마음의 벽을 쌓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적 공동체의 의미는 한갓 환상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양적 팽창주의의 선교만을 고집하여 왔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몸집에 비해서 한국교회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유아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교회의 발전 또한 오늘의 황금만능주의 풍토 속에 세상발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이 세속에 살면서 세속의 모든 악과의 쟁점을 통해 진리를 증거하고 살아갈 평신도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에는 인색하였다. 오히려 성당 짓기, 교구마다 신학교 세우기, 해외나들이 성지순례, 교세확장을 위한 업적위주의 선교활동을 위주로 평신도를 조직화 시켰고 그리고 더욱 속물화시켜버렸다. 이제 비대해진 몸집과 방만해진 조직을 운영하려면 돈의 필요성은 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성직자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사제들이 돈을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데도 한계성이 드러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대해진 몸집과 방만한 조직을 유지하려면 사제들은 평신도들을 향해 고작 돈타령 설교를 해야할 것이며, 그리고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정신적 위로를 받고자 찾아간 교회가 정신의 고향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대중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오늘의 한국 교회는 평신도를 「마르타」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마리아'의 입장에서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 교육으로 재무장 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황금만능주의 사회문화 안에서 살면서 이러한 행태를 변화시키려면 무엇보다 교회 자신부터 먼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돌려 드리는 회심이 요청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 안으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하려면 선교기교와 기술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와서, 그들이 보고 믿을 수 있도록』일차적으로 교회 안에 거룩한 사제들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신학교 교육은 그 어느때 보다도 기도와 활동의 균형을 잃지 않는 데서 중요하며, 신학생을 교육하는 교수님들의 신앙과 삶의 일치된 모습 또한 중요하다. 그것만이 바로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교회의 핵이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교회가 이 상황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목자인 주교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평신도만 재교육의 대상이 될 것이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모두 다 재교육이 되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재무장되어야한다.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 모두 함께 제 자리에서 교회의 복음 삼덕의 정신을 다시 익혀야한다. 교회가 복음의 정신을 익힌다는 것은 종말론적인 개념 안에 산다는 뜻이다. 이미 교회역사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듯이, 교회가 이 종말적 개념을 살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운명도 분파주의, 영성주의, 신앙자유주의에로 빠지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호언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라, 인간이 되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를! 과월절 날의 군중들의 환호소리가, 그 다음날 어떠한 외침으로 바뀌었는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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