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폭염을 피해 휴식하려는 인파들이 극성스럽게 계곡으로 바다로 향하고 있다. 때를 같이 해 바가지 상혼이니 피서지 쓰레기니 하는 여름철 단골 메뉴가 방송과 신문지면을 메우고 있다.
더위를 피해 휴식하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다. 그러나 더위의 시작과 함께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서양의 동적인 피서와는 달리 삶의 자리에서 머물며 무더위를 식히는 정적인 피서가 우리의 고유한 여름나기였다.
무더운 여름날 한산모시로 지은 모시옷을 입고 바람이 잘 통하는 대청마루에 화문석을 깔고 앉아 전주 죽선을 부치며 글을 읽거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여기에 갓 퍼 올린 우물물에 차가워진 수박이라도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안빈낙도가 따로 없다.
또한 우리네 조상들은 무더위를 이기는 지혜를 삶의 의미로도 승화시켜 사용하곤 했다.
일례로 전통혼례복의 속적삼은 계절과 관계없이 모시로 만들었다. 이는 모시의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에 의미를 붙인 것으로 올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듯이 나쁜 일은 모두 빠져나가고 한 평생 시원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단순히 육신의 더위만을 피하는 성향이 강한 서양의 피서법보다 삶의 자리에 머물면서 그 관계성 안에서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우리의 피서법이 훨씬 더 품위있고 복음적이다.
얼마 전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는 관광사목 지침서를 발표하면서 『휴식의 참된 의미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시간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특히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성서상에서 휴식은 해방을 상징한다.
참된 휴식은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얘기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후 7일만에 휴식하신 것을 뒤 따르는 것이다.
결국 휴식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의 휴식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휴식의 즐거움 속에서 하느님 찬미에 전념하는 것인 것이다.
참된 휴식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지상의 휴식이 얼마나 즐겁게 기쁨 속에서 이뤄지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느냐에 달려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반항했을 때 휴식을 잃었듯이 우리도 일상 속에서의 신앙생활에 따라 휴식의 여유로움이 결정이 될 것이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휴식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이다.
우리는 지상의 휴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주실 영원의 안식을 미리 맛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너무 도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직장과 집, 노동과 휴식, 추구와 획득 그 삶의 메카니즘 속에서 때가 되면 일을 하고 때가 되면 쉬고 때가 되면 눈을 뜬다. 자아라는 알맹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자신과 주변에 대한 되돌아 봄 없이 이뤄지는 휴가라는 것 역시 때가 되었으니 떠나는 것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된 인생이다.
예수님은『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고정관념의 탈피를 통해 해방과 창조주의 영광이라는 휴식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셨다.
더위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 이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여름 피서길에는 가슴 속에 십자가를 모시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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