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자유와 인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세계대전에 가담했던 미국이 자국 내 소수민족, 특히 흑인들의 인권에는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모두 120만의 흑인병사들이 온갖 차별을 받아가며 「백인들의 전쟁」에 참전했었다. 하지만 미 NBC방송의 앵커인 톰 브로코가 지은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을 보면 당시 미국사회의 흑백차별이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절감할 수 있다.
사례 1. 신병훈련소에서도 흑인차별은 여전해서 흑인병사들은 백인동료들과 훈련을 마치고난 뒤 그들과 같은 수영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군부대가 아닌 일반 사회에서도 흑인들은 버스 뒷편의 지정석을 이용해야 했고, 공중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이해가 간다.
사례 2. 백인 장교들은 흑인들의 전투력을 의심했다. 열등하다고 본 것이다. 심지어 유럽의 전장에서 조우한 적군(독일군) 병사가 흑인 미군병사에게게 『당신들, 여기서 뭐하는거요. 이건 백인끼리의 전쟁인데…』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앞서 2차전 기간 중 흑인 참전군인 수가 120만이라고 했는데 이 가운데 10%만이 실제 전투에 나갔다. 나머지는 주로 병참이나 수송부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톰 브로코의 「위대한 세대」는 미국사회의 흑백문제를 다룬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유, 평화, 민주 등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 오늘의 「위대한 미국」을 세운 전쟁세대들에 대한 헌사(獻辭)다. 브로코는 잔혹한 독재자들로부터 자유세계를 구해낸 이들의 일화와 함께, 인종차별의 편견에 사로잡혀 수많은 흑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백인 전쟁세대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수치」(Shame)라는 별도의 장을 통해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전쟁세대들의 공과(功過)를 똑같이 지적한 브로코의 책은 전후 미국인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라고 할만하다.
공정(公正)보도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루기가 쉽지 않은 과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또다시 공정보도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물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언론은 그레이엄여사의 죽음을 권력의 전횡에 당당히 맞서 「진실」을 지켜낸 위대한 언론영웅으로 그녀를 추모했다.
그레이엄 여사가 미언론계에 남긴 커다란 족적에 흠집을 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월남전 수행과정에서 미행정부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스」사건과 워터게이트사건 보도과정에서 권력의 외압을 지켜낸 일 등은 아무나 하기 힘든 업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미국언론들은 그레이엄 여사의 화려한 공적에 가려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가 1971년 「펜타곤 페이퍼스」사건을 계기로 워싱턴의 월남전 보도 태도를 반전(反戰)으로 선회하기 이전까지 워싱턴포스트는 주전(主戰)의 편에 서서 신문을 만들었다. 일례로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 1964년의 통킹만사건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미행정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그레이엄 여사가 사장 때의 일이다.
물론 워싱턴포스트만이 참전론 설파에 앞장섰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워싱턴 권부의 핵심인사들과 깊은 교분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로서는 그 뒤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가져온 베트남전 참전결정 과정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 그녀가 생전에 펴낸 자서전 「사적인 역사(Personal History)」는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마치 「민족지」를 자처하는 우리의 일부 언론이 일제치하에서의 행적에 관해 일언반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레이엄 여사는 또 사회적 약자인 힘없는 여성이나 유색인 등에 대해서는 응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레이엄 여사의 부군이었던 필립 그레이엄은 언론은 「역사의 초고(初稿)」라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가 역사를 쓰는 기초자료가 된다는 뜻이니, 공정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들린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일수록 이 점에 유념해야 한다. 행여 『우리가 쓰면 역사가 된다』는 오만함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어떤 동기에서건 사실을 비틀어 역사를 고쳐 써보려는 시도는 참으로 어리석다. 인터넷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레이엄 여사에 대한 미주류 언론의 찬양일변도 부음(訃音)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녀의 공과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미국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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