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여 농사지은 것이기에 농부는 자신의 경작지에서 생산한 곡물의 가격이 높기를 바란다. 그래야 아이들 학비도 마련할 수 있고, 내년 농사를 위한 준비도 해나갈 수 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달픈 삶을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 잠시 휴가라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움직이기만 하면 돈이 든다. 많은 종류의 세금과 보험들을 지불해야하고, 할부로 구매해온 온갖 종류의 농기구와 생활기구들의 빚도 갚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다 만만찮다. 농사를 잘 못 짓거나 계산을 잘못하면 파산으로 연결되어 거리에 나가 앉는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멀리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농장의 식량을 나누는 일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5만 톤의 곡물을 구매했다는 것은 미국의 농부 100명과 이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고생하여 농사지은 것을 몽땅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위해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캔사스에 있는 밀을 서부 LA, 샌프란치스코, 시애틀 중의 한 곳으로 운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곡물운반선이 이곳에 정박하기 때문이다. 5만 톤이면 10톤 트럭 5천대 분이다. 농가의 창고에 있는 밀을 기차 정류소로 부지런히 옮겨야 한다. 시간을 너무 끌어도 안된다. 운반도중에 오염물질이 과다하게 들어가도 곤란한 일이다.
기차의 화물차량 하나가 100톤을 싣는다면, 5만 톤은 화물차량 5백 대를 동원해서 실어야 하는 분량이다. 화물차량 1대가 10m의 길이라면, 길이만도 5㎞나 된다. 이 정도면 기관차도 여러 개 동원해야 하고, 한 번에 다 끌고 갈 수도 없다. 농가에서 5만 톤을 기차에 옮겨싣는 일은 최소한 1주일은 걸리는 일이다. 록키산맥을 넘는 수 천 ㎞의 거리를 달리는 일도 만만찮다. 달리고 또 달려 한없어 보이는 길을 며칠이고 계속해서 가야한다. 기관사들도 사람이라, 식사도 해야하고 잠도 자야 한다.
마침내 기차가 서부 해안에 도착하여 우리의 배가 기다리는 곳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일도 많은 일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먼저 기차에서 부두의 창고로 옮겨야 한다. 그 다음엔 다시 배에 실어야 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동안 이 엄청난 양의 곡물이 부패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방부제도 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썩어서 먹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는 방부제가 들더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낫다. 방부제가 겁나서 전혀 사오지 않을 수는 더더구나 없다. 4700만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일이다.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기까지 1달은 족히 걸린다. 배가 부산이나 인천에 도착하면, 하역할 수 있는 부두에 닫기 위해 다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내 하역을 하면 밀은 부두의 창고에 저장된다. 이제는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제분소로 운반해야 한다. 대형의 곡물운반차량들이 밤낮 없이 부지런히 왔다갔다한다. 제분소에서 밀가루가 된 밀은 다시 라면공장이나 제빵소로 옮겨지게 되고, 마침내 대형유통망을 거쳐 소매점으로 가서 사갈 사람들을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전 과정이 잘 진행되면 두 달 정도 걸린다. 오늘날 우리는 인천항과 부산항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구매해온 곡물을 주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5만 톤 배 한 대 분량씩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 어느 한 곳에서라도 차질이 생기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질이 빈번하면, 재앙을 의미하게 된다. 앞으로도 이러한 구조는 반드시 차질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차질 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위험한 요인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환경이 점점 더 나빠만 가면, 외국에서 원자원을 사다가 이 땅의 환경을 이용하여 제품을 생산하여 내다 팔아 곡물과 원자원 구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현재의 산업구조에 위험이 몰려올 수 있다. 돈이 충분히 있다하더라도 외국에서 내다 파는 곡물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큰 문제이다. 필자는 이것이 가장 염려스럽다. 우리 다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머리를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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