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삼복더위가 다 지나고 가을이 우리곁에 다가서고 있다. 지난 여름에도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정치인들의 저질정쟁은 색깔론으로까지 번졌다. 더구나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지식인들까지 편가르기 소모전에 나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주 5일 근무제」를 거론하자 근로시간 단축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부가 연내 입법을 서두르자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이 정부의 노동정책을 두고 「인기를 위해 제도와 정치를 뛰어넘는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김호진 노동부장관은「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의 얼굴을 갖춘 휴머니즘」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국정홍보처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 「주 5일 근무제」에 대해서 74.1%가 찬성했으며 민주노총이 조합원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에서는 94.8%가 찬성했다.
더구나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70%가 이미 토요일에 매주 또는 격주로 휴무를 실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연간 근로시간이 가장 많고 유일하게 주 6일 근무를 실시하는 나라로서 부끄럽기도 한데 세계에서 법정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에서는 최근 주 4일 근무제를 들고나와 관심을 끌었다.
이제 「주 5일 근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찬반을 논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다. 노사정과 여야도 정책협의회를 통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이다. 언젠가는 택해야 할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주 5일 근무제」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가와 건강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일자리 나누기와 생산성도 끌어올려 경제와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다져나가야 할 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여가활동의 증가와 소비비중의 증대로 산업, 문화, 교육, 관광레저 부분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고 우리의 의식과 생활 또한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천주교회에도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와 「주 5일 수업제」실시 이후 한국교회가 겪게 될 상황은 또다른 의미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일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문제와 전반적인 신앙생활의 변화로 사목환경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행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따르면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신자가 43.8%에 달했으며 젊을수록 교회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8.6%가 「주 5일 근무제」로 매주 생기는 연휴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생활과 여행을 즐기겠다고 답해 주일을 지키는 신앙생활은 어려워질 것 같다. 우리교회도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교회가 겪었듯이 청장년들이 떠난 빈 자리를 노인들이 지키는 쓸쓸한 교회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현상이 점점 확산될 것은 뻔한 일이고 대축일에나 미사에 참례하는 일이 예사스럽게 될 지도 모른다. 한국천주교회에 있어서 「주 5일 근무제」는 기회라기보다는 시험이자 타격이고 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주 5일 근무제」시행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대처방안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는 첫째, 권위주의적이고 군림하는 닫힌 교회를 지역사회와 모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생활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열린 교회로 지향하는 대변혁이 이뤄져야 하고 둘째,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전례의 개발 셋째, 대상별 전문화된 선교방법의 연구와 다양한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 개발 넷째,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 하는 대명제 아래성직자들이 사목쇄신에 떨쳐나서고 평신도 또한 신앙생활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성찰과 실천이 무엇보다 강조된다고 하겠다.
늦기전에 한국천주교회는 전국의 7개 대학을 중심으로 신학적 이론을 모색하고 주교회의와 교구 시노드를 통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주 5일 근무제」에 따른 사목대안이 마련되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실천에 모두가 나서야 할 것이다. 교회 스스로가 세속적인 손익을 따질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하리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거둠에 익숙해 온 교회가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교회경영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성직자와 평신도가 역할의 분담을 통해 전문성을 살려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성숙된 교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시행될 「주 5일 근무제」는 우리 모두에게 교회사목과 운영으로부터 신앙생활에 이르기까지 한단계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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