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를 떠올린다.
1927년에 태어난 그는 44년에 최연소 사병으로 소집되었다. 미군 포로가 되었다가 46년 석방된 후에는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석공에서부터 재즈밴드의 악사를 하는 등 밑바닥 일을 했다. 이 무렵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후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는 그는 정치활동에도 열의를 보여왔다.
군축과 제3세계의 기아문제에 온 힘을 쏟아 일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우리에게는 「양철북」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운전을 하지 않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안전운행에만 정신집중을 해야 하는 행위가 끊임없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작가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그와 독일에 대해 내가 가장 놀라워하는 것이 있다. 그는 당당하게 독일의 통일을 반대해 온 작가였다.
서독정부에서 추진하는 통일정책과 자신의 통일관이 다른 것이 이유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독일이 인접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에게 끼친 죄악을 생각할 때 「독일만의 행복한 통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 우려와 위험이 되는 통일독일도 그는 반대했다.
절친했으면서도 빌리 브란트 전 서독수상의 통일노선에는 반대해 왔던 그는 1990년의 한 연설에서 『브란트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런 즐거움」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고통스런 즐거움」이야 말로 성숙한 사회가 이룩한 다양성인 것이다.
독일이라 해도 이런 그에게 왜 반대세력의 위협이 없었으랴.
그는 함부르크 역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젊은 청년에게 「매국노」라는 말과 함께 얻어맞기도 했다. 집으로 배달된 소포에 오물이 가득 들어 있기도 했다.
통일이란 말 그대로 하나됨이다. 나누어진 둘이 셋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통일이다. 거기에 개혁 반개혁이 어디 있는가. 통일세력과 반통일 수구세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 민족이 하나됨의 자리에.
내가 기억하기로는 현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통일방식이 위헌이라고 말한 목소리가 있기는 했다.
가톨릭대 박건영 교수였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합의했다는 6?5공동선언에 대해 박교수는『1국가 2체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개념을 규정한 헌법 제4조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동국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였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형식상 공통점을 가지나 전자는 통일전 상태, 후자는 통일의 상태를 뜻하기 때문에 기능적 조응성(Functional Equivalence)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박교수는 『통일방안은 국체와 직결된 문제로 국민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통일을 반대하겠는가. 그렇다고, 북한의 통일방안(나는 이것을 학교에서 적화통일이라고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을 결집시킨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앞까지 찾아가는 방법만이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납북자 가족이나 전쟁 미망인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한국전쟁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없는 설움 속에서도 보훈가족에 대한 국가의 배려로 항공회사의 직원까지 되었으나, 사회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은 이민을 떠나야 했던 내 동서나 그 어머니의 심정은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아버지는 육사를 졸업한 장교로 전쟁발발 초기에 전사해 현충원에 묻혀 있다.
그들을 입다물게 하고 얻어지는 통일이란 또 무엇인가. 그것이 어찌 하나됨인가.
내가 하는 것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의 덕목임으로 다들 나를 따르라 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기 위한 오랜 투쟁과 희생 끝에 얻어진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는 높은 가치로 존중되는 것이다.
200년을 맞는 신유박해의 저 많은 순교자들, 그 증거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땅의 질서」인 당대의 권력에 맞서 『아니오!』라고 부르짖으며 「하늘의 질서」를 몸으로 살고 스러져간 고귀한 영혼들이다.
자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당대 주류의 행동양식을 의심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지향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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