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도 한풀 꺾였는지 이른 아침 공기가 이젠 제법 차갑다.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따갑지만 그 강렬함이 한여름만 못함은 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가 우리 곁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을 내다보며 교회도 「순교자성월」을 맞는다. 한껏 풀어헤쳐 놓았던 저고리를 서둘러 매만져야할 듯한, 또 이런 저런 핑계로 느슨하게 밀쳐놓았던 마음들을 서둘러 챙겨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기는 것은 비단 순교자성월이 가져다 주는 무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 순교자성월은 그 어느해 보다 풍성한 한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무엇보다 '신유박해 200주년'이라는 시기적 이슈가 이런 예감을 가능케 한다.
한국교회는 신유박해 200주년을 앞두고 여러 분야에서, 각 교구 혹은 기관별로 이를 기념할 준비를 서둘러 왔다.
비근한 예로 한국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주최하는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가 있다.
8월 15일 개막돼 10월 15일까지 두달간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계속되는 이 「신앙의 향기200년-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특별 전시회」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초기부터 신유박해 시기까지의 한국 천주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급 유물 유품 등 100여점이 선보인다고 한다. 이 전시회를 위해 로마 바티칸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황사영 백서 진본(眞本)까지 공수(空輸)돼 온 것으로 매스컴들은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앙선조들의 믿음과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각종 유품 유물들을 통해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학문, 사회, 문화, 생활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이번 전시회가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감동과 묵상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다.
9월 중엔 각 교구별로 순교자현양대회가 열릴 예정이고 올해엔 특히 서울대교구가 주관하는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순교자현양대회가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대대적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각 교구별로 추진하던 시복시성 추진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통합 추진키로 하고 교구 대표자 모임을 통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신유박해 200주년이 하나의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수많은 행사와 기회들이 단지 행사를 위한 행사, 혹은 그 활동이나 진행에만 역점을 두는 그러한 외적이고 형식적인 행사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는 그만두기로 하자. 다만 올해엔 이러한 연례적인 혹은 시의적인 행사들이 순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깊이 다져볼 수 있고, 그래서 순교선열들에 대한 신심 행위와 그 실천들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실제로 구체화되고 진하게 뿌리박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교자성월을 사는 우리 각자의 마음자세와 다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순교의 의미를 깊이 깊이 다져야 함」은 바로 묵상과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희생을 치루었는지, 그들의 순교가 우리 개인이나 교회에, 나아가 우리 민족사 안에 어떠한 의미를 부각시켰는지, 그들의 죽음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곰곰이 묵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 순교의 열매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교회요, 우리가 수확한 순교의 열매를, 그 유산을 우리의 미래인 후손들에게 꺼지지 않는 불씨로 전달해야할 의무가 또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올 순교자성월엔 가까운 곳에 있는 순교기념관이라도 한번 찾아가 보자. 우리의 신앙선조들을 짖눌렀던 갖가지 형구(形具)들은 보기만 해도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인근의 순교성지라도 좋다. 그곳에서 참수 치명하신 선조들의 기도를 청하며 묵주의 기도라도 한 꾸러미 바쳐보자. 가족과 함께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도 저도 힘들다면 순교 성인 한분에 대한 생애라도 묵상해봤으면 좋겠다. 이 한달 동안만이라도.
순교신심을 위한 여행, 지금부터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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