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특별히 올해는 신유박해 200주년의 해에 맞게된 순교자 성월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새출발을 신유박해 200주년과 함께 시작하게 됐다는 그 사실 자체가 신앙선조들의 전구하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천상교회에서 지켜보고 있을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신앙의 쇄신과 내적 성숙을 위해서 더 큰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일종의 신앙적 위기와 영성적 갈증은 이를 통해서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쇄신된 영성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이웃에 전파하고자 하는 체계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동안 사회일반이나 다름없이 내실을 기하기보다 외부로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했던 모습은 없었는지 반성할 일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면서 국내외적으로 괄목할 만한 외적 성장을 이룩했으나 내적 성숙에 있어서는 이와 보조를 같이하지 못하고 미성숙을 아직도 면하지 못한채 새로운 세기, 새천년기를 맞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교회의 괄목할만한 외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는 내적 미성숙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신앙 및 신학의 교육부족 내지 부실에 있다. 신자들의 신앙에 깊이가 없음은 교회 당국이 실시한 신앙교육의 깊이없음과 무관하지 않으며, 더불어 한국교회를 주도하는 성직자 계층의 영성 깊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신앙교육의 내용이 지성적 차원에만 머물고 마음 깊이까지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그리므로 신앙의 진리에 대한 지성적 이해와 동의를 겨냥하는 지금까지의 교리교육은 신앙을 깊이하고 영성을 강화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결국, 한국교회의 내적 성숙은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는 성직자 수도자 계층의 신앙생활 깊이, 즉 영성의 깊이에 결정적으로 좌우될 것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층의 영성의 심화가 한국교회의 내적성숙을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겠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동안 이룩된 약동적인 외적 성장에 부응하는 내적 성숙을 이룩하는가의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범과 신앙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신앙 혼을 계승하여 진리를 향한 철저한 구도생활이 절실함을 깨닫도록 하자. 무엇보다 이웃과 만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겸허한 봉사자세를 부단히 견지하고 심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가 순교자성월을 지내는 이유는 순교자들이 목숨바쳐 피로써 지키고 가꾸어 물려준 그 신심을 오늘에 되살려 일상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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