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년 전에 가족과 함께 본 영화,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 2007)를 소개하려 한다. 이 영화는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 속편으로 제작된 코미디지만, 예상 외로 진지한 메시지를 담은 좋은 영화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에반 벡스터는 뉴스 진행자로서의 인기에 힘입어 “세상을 바꾸자(Change the World)”는 선거공약을 내놓아 상원의원에 당선된다. 첫 등원 전날 잠들기 전, 에반은 선거공약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은 에반에게 방주를 만들라는 소명을 부여한다. 그러나 에반 본인도 노아가 되어가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뿐 아니라, 가족이나 시민들 역시 에반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는 기행(奇行)으로 여겨 비웃을 뿐이다. 코믹하게 이루어지는 노아로의 변신과 방주 만들기. 우여곡절 끝에 에반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방주를 완성하고, 인간 편의를 위한 자연 난개발과 파괴가 초래할 재앙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데 인간 중심의 오만불손한 환경파괴 실태와 환경보존의 필요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보다 필자에게 감동을 준 것은 방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영화에서 방주 ‘ARK’는 ‘an Act of Random Kindness’의 머리글자를 합한 단어로 재해석된다. ‘무심코 베푸는 친절한 행동’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방주,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작지만 엄청난 힘을 지닌 방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주제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에 현혹되어 떠돌이 개에게 물 한 그릇 떠 주는 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에반이 방주 제작에 동참하겠다고 모여든 동물들을 보살피고, 밥도 같이 나누어 먹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에반은 자신의 작은 친절이 모든 생명체에게 활력을 주는 행위임을 행동함으로써 깨우친다.
방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메시지를 통해 한층 큰 의미가 부여된다. 방주를 만드는 일로 정치계의 우스갯거리가 되어 버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던 아내 조앤 앞에 하느님이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든 위로 받고 싶었던 조앤에게 하느님은 남편의 행동이 가족에게 심적인 고통을 안겨 주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녀 가족에게 하나의 ‘기회’가 아니겠냐며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누가 인내를 달라고 하면 하느님은 그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누군가 가족끼리 좀 더 가까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그저 행복이나 친밀감을 주실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사실 아내 조앤은 상원의원이 되어 바빠진 남편이 자녀들과의 소풍 약속 한 번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걸 보면서 가족끼리 더 친밀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늘 기도했었다. 그런데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동물들조차 쌍쌍이 몰려들어 방주를 짓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정작 자신은 남편 곁을 떠나 있지 않은가. 조앤은 비로소 방주 만들기가 가족끼리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하나의 기회였다는 것을 깨닫고 자녀들을 데리고 에반에게 돌아간다.
영화 주인공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공약하는 정치인에서부터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이웃을 사랑하겠노라 약속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에 이르기까지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말은 한 가지이나,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필자는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을 더 아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동참하고 싶다는 우리의 기도와 바람이 사실은 거창한 일에서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활력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고, ‘무심코 베푸는 친절한 행동’으로서의 방주 만들기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대홍수가 지난 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이웃 앞에 펼쳐진 무지개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연대를 축복하는 상징이라고 한다. 지금 머물고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방주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에 옮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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