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1 : 현실과 꿈을 오가다
필리핀 출신 크리스티나씨(40)가 외국인 상담실을 찾은 것은 2008년 12월 26일이었다. 정신병이 의심됐다. 그의 증세는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으로 인한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았다. 2000년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9년째 혼자 살고 있는 크리스티나씨. 이혼사유는 남편의 폭력과 외도였다. 이혼 후 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홀로 돌아왔다. ‘한국에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기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크리스티나씨는 망상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
Case 2 : 어린아이가 돼 버린 엘리트 태국여성
2007년 이혼하고 여덟 살 난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태국 출신 마리아(가명)씨의 상황도 좋지 않다. 태국 상위 10위권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여성 마리아씨는 현재 성격장애를 앓고 있다. 상담원에게 늘 조르고 떼쓰고 징징거리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다행히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30~40만원의 보조금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으나 정서적 치료 없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Case 3 : 위자료·양육비는 먼 나라 이야기
필리핀 출신 제니(가명)씨는 이혼 소송에서 항소 끝에 위자료 600만원과 양육권, 양육비 월 30만원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전 남편은 딸아이를 데려다주지 않을 뿐 아니라 위자료나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을 동원하고 나서야 딸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니씨는 많이 지쳤고 어린 딸도 상처를 받았다. 제니씨는 더 이상 남편과 싸우고 싶지 않아 위자료와 양육비는 포기했다. 딸과 함께 사는 것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사회적 무관심과 열악한 지원 시스템 속에 결혼에 실패한 다문화가정 여성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가난을 피해 온 그들에게 ‘한국남자와의 결혼’은 삶의 목적이자 수단이다. 따라서 ‘이혼’은 삶의 목적과 수단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미약한 상태다. 결혼이민자의 한국 적응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혼한 이민 여성은 힘겨운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결혼이민자, 5년간 대거 양산
2003년을 전후로 성행한 국제결혼중개업체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가난의 돌파구로 삼는 결혼이민 여성을 대거 양성했다. 1990년 당시 총 혼인의 1.2%(4710건)에 불과했던 국제결혼 수는 2003년 이후 급증해 2007년에는 총 혼인의 11.1%(3만8491건)를 차지했다. 그 중 75%에 이르는 2만9140쌍이 외국인 아내-한국인 남편 부부다. 이민 여성의 결혼과 더불어 이혼도 급증했다. 2002년 401건에 불과했던 이혼건수는 2007년 5794건으로 5년간 14배 이상 증가했다.
#왜 이혼할 수밖에 없었나
이들 여성 중 27.5%의 여성은 가족갈등·가정폭력 등을 이혼 사유로 들었다. 애정 없는 결혼과 낯선 환경, 남편의 외도와 폭력, 시댁 식구와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이혼. 결혼을 통해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 한국으로 왔으나 이혼으로 인해 꿈은 산산조각 난다.
#이혼, 그리고 그 후
그러나 이혼을 한 결혼이민 여성들의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국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단 채 한국 생활의 실패를 딛고 본국에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혼이민자가 이혼녀가 돼 한국에서 살아가기도 만만찮다. 가장 먼저 따라오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이민 여성의 57.5%는 절대빈곤층에 속한다. 국적을 취득한 후 이혼을 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국적 취득 자격 미달인 결혼 2년 미만의 이혼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러 취업조차 어렵다.
뿐만 아니라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한 상처는 결혼이민여성의 사회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직장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극도의 스트레스는 우울증, 심한 경우에는 망상 장애까지 불러일으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례도 있다. 자녀양육권 획득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자녀양육권을 얻는다 하더라도 경제력 부족이나 정신적 장애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거나 결국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소외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2003년 이후 급증한 결혼이민자들을 위해 다양한 센터와 상담실이 생겨나 한국 생활 적응을 지원하고 있지만, 언어·문화 등의 교육프로그램과 상담 중심이고 이혼한 이민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이혼을 준비 중인 결혼이민 여성을 위한 상담과 보금자리를 지원하는 쉼터나 센터가 있지만, 정작 이혼을 하고 난 후 이들이 완전한 자립을 하기까지 돌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수원 엠마우스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강승호씨는 “이미 이혼을 한 결혼 이민자의 경우에는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로 낮 시간에 운영되는 센터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어렵고, 법률 상담 등을 통해 이혼소송 절차를 모두 끝낸 경우에는 센터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혼한 결혼이민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전국의 각 센터에는 이혼소송을 준비 중이거나 이혼 상담을 진행 중인 결혼이민 여성은 많았으나, 이미 이혼을 한 여성들의 경우는 소재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적잖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2003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새 결혼이민 여성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힘에 부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를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결혼이민 여성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언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민자들의 천국으로 불렸던 프랑스에서 지난 2005년 11월 27일 일어난 이민자 소요사태는 언젠가 한국 사회에 드리울지도 모를 그림자를 암시해준다. 프랑스는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대규모 이주노동자장려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현재는 전체 인구의 10% 이상을 이민자가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알아서 해라’식의 정책을 펼쳤다. 일자리를 갖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던 이민 1세대는 정부의 무관심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2, 3세대는 사정이 달랐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그들은 ‘버려진 시민’, ‘2등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대규모 소요사태로 그 불만을 표출했다. 이민정책의 사각지대 속에서 가난, 자녀양육 문제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혼한 결혼이민 여성들은 건강하지 못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양산함으로써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번져 갈 수 있음을 프랑스의 사례는 보여준다.
#교회의 사명
결혼이민자들의 실패 그리고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그들의 불행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언젠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국 교회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총무 허윤진 신부는 “이혼한 이주 여성을 위한 전문 상담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펼치는 것도 사목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면서 “이들이 한국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리스도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몫”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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