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평소 안하던 애교를 부리며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순간 긴장하며 뭐냐고 물었더니 어린이날에 꼭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는 게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5월이 왔음을 절감하면서.
우스갯소리로 5월은 부모들에게 재정적으로 힘겨운 달로 통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평소보다 더 챙기고 신경써야할 부분들이 많다. 부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기분 좋은 의무란 생각도 든다. 평소 바쁜 일상 속에 묻혀 살며 차일피일 미루고 담아 두고만 있었던 마음들을 꺼내 감사와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기쁜 맘으로 사랑을 전하고 확인하는 순간이다.
가정의 달 5월, 일 년 중 제일 푸르른 계절이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이 모두 이 달에 있다. 그래서 5월은 신앙의 뿌리이며 한 사회를 이루는 기초 단위인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기다.
가정은 믿음과 사랑으로 동고동락하는 안식처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지난 40년간 고도의 산업화를 거치며 물질만능풍조와 이기심이 가정까지 파고들어 전통적 가정 윤리, 가치관이 상당히 무너졌다. 핵가족, 결손가정, 조손가정, 기러기 아빠, 독거노인 등 국어사전에도 없던 신조어가 등장했다. 일부이지만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직분을 저버리거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가정 해체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조건들이 필요할까. 그 으뜸에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두고 싶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요 맹목적이라 말한다. 박목월 시인은 시 ‘모성’에서 “다만 어린 것의 손을 잡고, 안으로, 보다 높은 세계로, 맹목적으로 달리는, 안으로 타오르는, 이 꺼질 날 없는 불덩이!”라고 ‘모성’을 정의했다. 희생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나는 한 모습은 그분들의 희생의 모습이다. 참 사랑은 희생을 불사하게 마련. 누구나 부모님들의 희생에 관해 밤을 지새워도 다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는 뜻한 바가 있어 ‘행복한 가정 십계명’을 만들어 보았다. 앞으로 이 계명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이다. 첫째, 구별은 있어도 우열은 없다. 열린 가정은 높고 낮음보다 애정과 사랑의 요소에 관심이 높다. 둘째, 실수없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이 아니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있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이다. 셋째, 가정을 묶어주는 끈은 제도나 법률이 아니라 사랑이다. 넷째, 상대방을 위해 속도를 늦추고 높이를 낮추며 때로는 기다림을 위해 멈춰 선다. 가장 큰 사랑은 ‘눈높이’로 표현된다. 다섯째, 기회가 있는 대로 온갖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눈다. 여섯째, 같은 취미를 만든다. 일곱째, 대화는 오해와 불신을 몰아내며 이해와 사랑을 증진시킨다. 여덟째, 위기와 갈등이 없길 바라기보다 갈등과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구한다. 아홉째, 쉬는 시간을 마련한다. 함께 산책하고, 차를 마신다든지,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열 번째,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나 자녀들도 아니다. 하느님이 가정의 주인이시다.
가정이 바로서야 우리나라와 교회가 바로 선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옛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랑 넘치는 가정을 가꾸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이런 의미에서 5월만이 아니라 1년 365일이 가정의 날이길 희망한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전할 작은 선물을 서둘러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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