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햇살이 푸석한 내 얼굴을 훔치는 한낮, 나무로 엉성하게 엮어서 만든 건조대에 널어둔 세탁물 사이를 한들거리며 부유하는 바람이 하얀 미소를 짓는 오후, 이런 날은 굳이 지난 날 푸른 파도와 같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만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어도 팔레트의 물감처럼 잔잔한 감동의 색채가 한 폭의 맑고 투명한 삶의 수채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회색 십오척 담을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높은 담이 세상을 가로막고 있을 듯해서 퍽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멀리하니 역시 하느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 생활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분명 거짓이겠으나 그것은 세상이라는 잣대에서만 그렇습니다. 가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순간이고 하루를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지금이 제게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세상에서 배운 어줍잖은 지식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얼마나 걸림돌이 되는지 체험하며 삽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제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줍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생각도 필요없습니다. 단순히 부모에게 매달리는 아이와 같이.
교도소라는 곳에서 생활하기가 쉽다고 하면 분명 거짓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살기 때문에 이곳은 덕을 쌓아가는 집이며 수도를 할 수 있는 수도원이 됩니다.
보기만 해도 문학 소년의 마음을 불어일으키는 저 청명한 하늘, 이 하늘을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연상케하는 티없이 맑은 하늘처럼 화평한 날들이 되시기를. 가끔 하얀 뭉게구름이 솜사탕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늘 하느님 성령과 함께 세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이쁜 물감을 풀어가는 은혜롭고 복된 삶이었으면 합니다. 척박한 교도소에 온정의 손길이 닿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 성령 안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 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순천에서 김동화(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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