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주어라.”(루카 22,3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후 베드로가 스승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시면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바로 앞에 하신 말씀을 다시 읽어본다면 스승의 심정이 좀 더 잘 느껴진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사제서품을 코앞에 두고 있던 피정 끝 무렵에 당시 교구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교구장께서는 내가 정한 서품성구를 보시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으셨다. 요지는 이랬다. 성구 내용은 베드로의 배반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이제 곧 사제가 될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구절을 택한 것인가.
그때 내가 어떤 답을 드렸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구장께서는 내가 드린 말씀을 듣고는 별다른 말씀 없이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가셨다. 감사한 건 그때 만약 그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물으셨다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주 가끔씩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왜 이 구절을 택한 것일까. 그런데 연차가 조금씩 더해가면서 그 구절에 대한 의미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사탄이 나를 체질해놓은 듯 나의 어두움은 더욱 크게 느껴지고 ‘나는 정말 회개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는 정말로 나약한 존재구나’와 같은 자책과 실망이 자주 나를 내리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또 다른 음성은 존재한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한줄기 빛으로 오시는 그분 음성에 어둠에 사로잡혔던 나는 다시 자유를 향해 나를 움직인다. 역시 그런 것이다. 이미 축복받은 존재라는 의식을 키우는 것이 나를 다시 그분께 온전히 귀의케 하여 공동체를 위한 삶으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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