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6일로 한국 순교 복자 103위가 시성된 지 꼭 25돌이 된다. 복자는 특정한 나라나 수도회에서만 공경을 받지만 성인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의 103위 성인은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즈음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돼 성인품에 올랐다. 당시 이 시성식은 교황이 로마 베드로대성당이 아닌 현지에서 거행한 최초의 시성식으로서도 보편교회는 물론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교회가 굳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이들을 시복·시성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의 권좌 앞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전구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더 본래적인 이유는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 완덕의 모범을 제시해주기 위함이다. 결국 시복·시성을 통해 순교자들을 기리는 일은 순교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본받아 그에 맞갖은 삶을 살아갈 때 더욱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교회는 103위 시성식 이후 모범적인 삶을 살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앙 선조 가운데 시복·시성되지 못한 순교자와 증거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현재 시복·시성 추진 중인 순교자뿐 아니라 25년 전 시성된 103위 성인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듯 우리 순교 성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교회의 여론주도층이라 할 성직자뿐 아니라 후손인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신앙 선조들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지녔던 믿음과 용기를 현재에도 살아갈 수 있을지 가르치고 배워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또한 성인들을 기리는 행사에만 치중한 나머지 순교와 순교 신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데 소홀함으로써 속도를 더해가는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허물어지는 우를 범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현대적 의미의 순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유혹들이 넘쳐난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개인주의를 비롯해 상대주의, 배금주의, 경제제일주의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유혹의 극복만이 순교 신심의 현재화를 가능하게 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뤄낼 수 있는 순교의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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